金여사 문제 사과로 해결할 단계 이미 지나
공천·인사개입 등 더 큰 눈사태 쏟아지기 전에
신속히 엄정한 조사받고 사법 심판 받는 게
정권과 여당, 金여사 모두에게 현명한 해법
이기홍 대기자 |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놓고 여권 내에서 왈가왈부하는데, 다 부질없다.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사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단계를 한참 지나버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일한 해법은 사법적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다. 대선 때부터 3년 넘게 보수진영 전체를 욕보이고 있는 여사 문제 수렁에서 헤어나려면 김 여사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반 국민 누구나에게 적용될 절차를 거쳐 공정하고 엄정한 사법적 처분을 받는 것 이외엔 그 어떤 출구도 없다.
명품백 사건이 터진 직후인 지난해 12월초 필자는 김 여사가 국민에게 사죄하고 사가(私家)로 가 근신해야 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배우자 문제의 재발을 막을 근본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여사 리스크가 돌이키기 힘든 지경까지 치달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만약 그런 민의에 순응했다면 최소한 명품백 문제는 일단락됐을 것이고, 그 후 10개월간 터져나온 온갖 새로운 논란들도 예방됐을 것이다.
부끄러운 일을 행했으니 사과는 당연히 해야 하지만 이젠 사과만으로는 안 된다.
명품백 수수 같은 참담한 일이 공개됐는데도 전당대회 문자 공개, 대통령실 이전 공사 업체 선정 논란, 공천 개입 논란 등의 낯부끄러운 일들이 계속 터져나오는 걸 보면서 국민들은 김 여사에 대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정말 최소한의 공사 구분 의식, 자기 위치 파악 능력, 윤리관마저 갖추지 못한 상태로 권력 정점부에 들어가 있구나라는.
설상가상으로 새로운 논란의 눈뭉치들이 구르면서 더 큰 눈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공천 개입, 그리고 끊임없이 소문이 도는 공공기관·공기업 인사 개입 논란은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안길 수 있는 소재들이다.
오래전부터 정치권 주변에선 브이원(V1) 브이투(V2)라는 말이 돌았다. 브이는 VIP를 줄인 표현으로 대통령을 지칭한다. V2는 김 여사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취지의 신조어인데, 필자는 이를 미확인 풍문을 근거로 한 과장된 용어로 치부해 왔다.
그러나 요 몇 달 필자는 김 여사가 실제로 공기관 인사에 관여하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는 사례들을 접했다. 전언으로 들은 것들까지 합치면 여사의 영향력 행사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정황이다.
더 놀라운 대목은 과거 정권들에서 처럼 베갯밑 송사로 대통령을 통해 간접적으로 뜻을 관철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김 여사가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자신이 이런 영향력 행사를 할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는 전언이다.
김 여사는 자신이 윤석열 정권 탄생에 상당한 지분이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이 검사 시절 정치적 탄압에 의해 좌천됐을 때 로펌에서 고액 보수를 제시하며 영입하려 했는데 자신이 검사의 길을 계속 가도록 설득하는 등 고비마다 자신의 조언이 남편을 오늘로 이끄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승이 아무리 훌륭하게 제자를 키웠어도 제자의 월급을 같이 쓰자고 할 수 없듯이, 김 여사는 국민에게서 실오라기만큼의 권력도 위임받은 적이 없다.
사인(私人)이 국정에 개입하면 그게 국정농단이고 그걸 막기 위해 시스템이 있는 건데, 시스템을 요식행위로 만들어버리는 행위가 용인된다면 이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대통령의 공천 개입도 범죄(박근혜 공천 개입 징역 2년)인데, 하물며 배우자가 공천이나 인사에 손을 댄다면 초가삼간이 아니라 정권 전체, 보수진영을 태워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위임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어디서 녹취라도 나온다면 탄핵몰이에 광분하지만 정작 윤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한 내용을 찾을 수 없어 재료 빈곤에 시달리는 좌파에겐 최대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여권은 이런 눈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에 신속히 김 여사가 사법적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과거 전직 대통령들 수준에 버금가게 소환돼 밤샘 조사받고, 만약 조금이라도 실정법 위반 혐의가 있다면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
귀 막고 시간을 보낸다고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지금 덮고 가면 다음 대선에서 여당 후보들이 먼저 여사 문제를 공약할 것이다. 여야 누가 이기든 그때는 종합세트로 탈탈 털리는 사법 심판을 받게 된다.
다음 대선까지 버티기도 쉽지 않다. 특검법에 대한 여당 이탈이 그나마 적은 이유는 단 두 가지다.
하나는 야당의 특검법이 너무 편파적이고 자의적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특검 광풍이 몰아치고 만약 의혹들이 사실로 확인되면 여권 전체가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들이 김 여사가 억울하다고 여겨서 특검법에 반대하는 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의원들 머릿속엔 이대로 거부권에만 기대 버티는 건 공멸의 지름길이라는 인식도 함께 퍼져 있는 그야말로 딜레마 상태다.
여권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밀리고 밀리다 이탈표로 인해 특검법이 거부권을 넘어서는 상황이다. 그때 맞게 될 매는 지금보다 몇 배 혹독하고, 여권은 “우리는 대통령 부인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집어넣는다”는 생색도 못 낸 채 공멸 위기를 맞게 된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절반 넘게 남아 있다. 자기 팔을 도려내는 결단이 대통령과 여권 전체는 물론 김 여사를 위해서도 현명한 해법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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