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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모험이 된 결혼과 출산…‘저출생’ 구조적 대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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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2014년 오스트리아 린처에 있는 요하네스케플러대에서 강연하는 낸시 폴브레 교수. 데어 슈탄다르트(DER STANDARD)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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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출생률(TFR)은 0.72로 떨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낮다. 과장되긴 했지만 한국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말마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인구도 줄기 시작한 지 이미 4년째다. 인구 구조의 거대한 변화에 맞닥뜨려 현 정부는 인구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저출생 대책을 편 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반전 없이 출생률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달 24일 대한상공회의소 지하 2층 국제회의장에서 ‘저출생 축소사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리는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그 구조적 원인과 나름의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다.



출생률은 ‘종합지표’라고 한다. 유례를 찾기 힘든 낮은 출생률은 축적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거울이다.



그 근본에 성(젠더) 불평등이 있다. 기조연사로 나서는 ‘돌봄 경제학’ 분야 선구자 낸시 폴브레 미국 매사추세츠대 명예교수는 자본주의 발전이 가부장 제도에 영향을 미치면서 저출생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그는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출산과 육아, 가사를 포함한 가정 내 ‘돌봄’이 일방적으로 여성의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저출생 현상은 그러한 오랜 작동 방식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전적으로 내맡겨져 있음을 뜻하는 ‘독박’이란 말을 돌봄 앞에 붙이는 한국 사회의 초저출생은 둘의 깊은 상관성을 드러낸다.



가정만이 아니라 노동시장도 여성에게 전혀 친화적이지 않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아이를 낳은 여성 상당수는 경력 단절을 감수해야 한다. 일터로 복귀하더라도 일자리 질과 안정성은 떨어진다. 소득 기준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고 환호하지만, 성격차지수(GGI)로 본 성불평등은 세계 100위권 언저리에 있는 ‘후진국’이다.



폴브레에 앞서 맨 먼저 기조연사로 서는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도 이런 맥락에서 견고한 남성 생계부양자 신념의 약화 등 한국 사회 발전 패러다임의 연쇄적 붕괴가 초저출생으로 귀결됐다고 본다. 그는 한국적 맥락에서 재생산 구조의 위기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조망한다.



기조강연에 이은 오전 원탁토론에서는 정현백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젠더 불평등 프리즘으로 저출생 현상을 좀 더 넓게 살펴본다.



이어 고달픈 청춘을 화두로 장강명 작가가 무대에 오른다. 그는 지난여름 개봉한 ‘한국이 싫어서’의 동명 원작 소설을 썼다. 한국에 살고 싶지 않아서 낯선 땅으로 떠나는 청춘에게 한국에 남아 결혼한 뒤 애 낳고 키우며 사는 건 더 큰 모험과 도전일지 모른다.



이전 세대보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비싼 집값을 감당하기 힘든 나라에서 이 시대 청년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하더라도 고된 양육에 출산을 포기한다. 저출생이란 말로도 모자라 ‘초저출생’으로 표현하는 사회에 진입한 배경엔 이들을 포위한 과도한 경쟁과 불안한 미래가 놓여 있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인구가 감소하는 ‘축소 사회’에 산다는 것을 넘어서 여성과 청년, 아이가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지속된다는 걸 의미한다. 어쩌면 저출생은 한국 사회가 성장을 좇으면서 유보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실타래를 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특별대담자로 나서는 앨런 말라흐(‘축소되는 세계’ 저자)의 주장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다면서 양적 성장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한다. 지금껏 잔뜩 부풀어 올랐던 모든 경제 사회적 조건이 풍선에 바람 빠지듯 수축하는 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가운데서 삶의 질을 높이는 방식으로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접근이 자칫 인구 변화란 도전에 대응을 포기하자는 것으로 오해되어선 안 된다. 그는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한다.



오후에는 시야를 좀 더 확장해 주제를 다룬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와 출생률의 상관관계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서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짚는다.



저출생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다. 많은 나라가 출생률 하락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80억명을 갓 넘어선 세계 인구 또한 50년 뒤쯤 약 100억명을 정점으로 한 뒤 감소로 전환한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인구 구조의 변화가 더욱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대만 등 네 나라의 출생률은 평균 1.04(2022년 기준)다. 같은 해 세계 평균 2.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캐런 에글스턴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실장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더욱 심각한 ‘인구 위기’를 겪는 원인을 진단한다. 이들 나라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빠른 속도로 산업화하면서 성장했다. 또 급격한 인구 구조의 변화 뒤에 남성 중심적이며 사회 보호망은 성긴, 치열한 경쟁 가운데 개인이 떠안는 위험이 큰 사회란 공통점이 가로놓여 있다.



그러면 인구 위기의 전환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요시노 마사노리 히타치제작소 시니어 프로젝트 매니저는 지방정부와 산업계 그리고 대학이 연계해 문제 해결을 실험하는 일본의 구체적 사례를 발표한다. 이어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가 사회를 보는 오후 원탁회의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다각도로 짚어본다.



오후 분과 세션에서도 논의가 이어진다. 세션1에서는 지역소멸의 관점에서 저출생 문제를 다루고, 세션2에서는 불안정한 사회에서 성인으로 이행 시기가 늦어진 청년의 삶의 궤적을 다룬다.



저출생은 우리에게 점점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더 늦기 전 성차별적이면서도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전환해야 한다고. 어쩌면 지금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쫙 펼쳐놓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바꿔나갈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겨레가 주최하는 아시아미래포럼은 이를 모색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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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신효진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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