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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이란, 내부 격론 끝 ‘보복 공격’···페제시키안 대통령 ‘패싱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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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 수위 저울질하던 이란, 속사정은…

“굴욕 겪은 이란, 이스라엘 공격할 수밖에”

끝까지 격론 이어간 이란 강경파 vs 온건파

경향신문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미사일 시스템이 1일(현지시간) 이란의 탄도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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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이스라엘을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보복 공격’을 단행하기까지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이란이 잇따라 겪은 굴욕을 갚아주려면 공격이 유일한 선택지라는 이란혁명수비대와 강경파의 주장이 신중론을 앞세우던 정부 온건파를 꺾었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란혁명수비대 지휘관들이 “이란이 강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미사일 공격이 유일한 행동 방침”이라며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직접 설득한 후 이날 공격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이란혁명수비대는 이스라엘 중심부에 있는 군사·안보 자원을 표적으로 탄도미사일 180발을 발사했다.

3명의 이란 당국자에 따르면 이란혁명수비대 지휘관들은 이란이 주도하는 ‘저항의 축’의 핵심인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흐름을 바꾸거나, 최소한 공격을 늦추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억지력을 신속하게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또 이스라엘이 이란으로 관심을 돌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메네이가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공습에 사망한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테헤란 하메네이 자택에서 긴급회의가 열렸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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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탄도미사일 보복 공격을 단행한 이후 시민들이 테헤란에서 축하 행진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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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강경파인 사이드 잘릴리 전 외교차관 등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에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온건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측은 이란을 전쟁으로 끌어들이려는 이스라엘의 ‘덫’에 빠져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융단 폭격으로 중동 지역 긴장이 극대화됐던 지난달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평화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발언은 “나스랄라의 피는 복수 없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하메네이의 입장과 배치돼 이란이 신중론에도 무게를 두고 대응 방식을 저울질할 것이란 관측을 낳았다.

NYT는 이들이 며칠간 격렬한 토론을 이어간 끝에 결국 강경파와 이란혁명수비대 지휘관들이 이겼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지상 작전까지 단행하자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장관을 포함한 이란 지도부도 강경파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하마스, 예멘 후티 반군 등 ‘저항의 축’에 속한 대리 세력과 신뢰를 회복하고, 이란이나 대리 세력이 약하다고 인식되는 상황을 뒤집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이번 결정에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전략적 인내’를 강조해 온 온건 지도부도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혁명수비대 작전사령관 아바스 닐포루샨의 사망 등에 즉각 대응하지 않은 것이 ‘오판’이라 결론지었다고 이란 당국자들은 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30일 “(이란 국민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자유로워질 것”이라며 이란 정권과 국민의 틈을 벌리려는 듯한 발언을 하자 보복 결정을 더 가속한 것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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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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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정 과정에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사실상 배제됐다는 ‘페제시키안 패싱설’도 나온다. 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칼럼에서 “이번 공격은 이란혁명수비대에 의해 실행됐으며 이란 정규군이나 공군의 작전이 아니었다고 한다”며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공격에 대해 통보받지 못했다고 한다”고 적었다.

권력 서열 2위인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최고 실권자인 하메네이보다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이란 정치 구조가 반영된 셈이다. 프리드먼은 “이란 정부의 분열을 나타낸 이번 작전은 아마도 내부 분열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미사일 공격 후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의 보복이 없다면 추가 공격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낸 반면, 이란혁명수비대는 ‘이스라엘이 보복한다면 치명적 공격을 추가로 단행하겠다’는 경고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이란은 이번 보복 공격을 결속의 기회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 언론은 하메네이가 이번 주 테헤란에서 금요 예배를 직접 열고 이란 지도부의 향후 행보를 가늠할 만한 설교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메네이는 국가 안보와 관련한 특별한 상황에서만 금요 예배를 주관한다. 하메네이가 예배를 이끄는 것은 이란 국민 영웅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미국에 암살된 2020년 이후 처음이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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