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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안창호 인권위 ‘비밀 진행’ 논란 진통…첫 전원위부터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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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30일 오후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전원위가 한 차례 정회되고 난 뒤 인권위 14층 전원회의장 입구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전원위 공개”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동안 안창호 위원장(가운데)이 입장하고 있다. 경향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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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 취임 뒤 처음 열린 전원위원회가 ‘비밀 진행’ 논란 속에 진통을 겪었다. 이날 전원위는 상정된 안건 심의를 모두 비공개로 예고해 인권위 안팎의 반발을 샀는데, 전원위 시작과 함께 1시간 가까이 위원 간 설전이 오갔으나 표결 끝에 비공개로 진행됐다. 인권단체 활동가들도 인권위 14층 전원회의장 입구에서 손팻말을 들고 인권위의 폐쇄적 운영을 규탄했다.



이날 오후 열린 인권위 제17차 전원위를 방청한 인권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남규선 상임위원은 전원위 시작과 함께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지난 20년간 위원회는 규정에 근거해 비공개 결정을 매우 제한적으로 했고, 위원장이 이를 뛰어넘는 결정을 한 경우는 없었다”며 “오늘은 안창호 10대 위원장이 주재하는 첫 전원위이고 이 안건은 안 위원장의 첫 번째 의제이다. 앞으로 10대 위원장이 인권위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바로미터가 될 이 순간에 느닷없게도 안건 심의 비공개 결정을 했는데, 이는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인권위는 누리집 ‘위원회 회의일정’에 30일 전원위 상정 안건 2건이 모두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공지한 바 있다. 이날 안건은 ‘2023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보고서 발간의 건’과 ‘고등학교의 휴대전화 수거로 인한 인권침해’로, 특히 앞의 인권보고서 발간의 건은 그간 모두 공개됐던 데서 갑작스럽게 비공개로 전환돼 내부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해당 안건은 지난 4월22일 8차 전원위에 처음 상정된 이래 5회째 상정됐다. 의결정족수 미달로 안건 상정이 불발된 전원위 횟수를 합친 10회 동안은 물론이고 이전 2년 동안에도 안건이 모두 공개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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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전원위가 한 차례 정회되고 난 뒤 인권위 14층 전원회의장 입구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전원위 공개”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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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상 상임위원은 이날 “(인권상황보고서 발간은) 내부검토 사항이라서 비공개로 해야 한다. 논의하다 보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기저귀 찬 게이’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본인의 발언 등이 언론보도로 잘못 알려져 피해를 봤는데 이런 허위보도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선 비공개가 맞다”는 취지로 말했고, 인권상황보고서를 작성한 직원을 거명하며 원색적 비방도 했다고 전해졌다. 이충상 위원은 지난 5월 ‘기저귀 찬 게이’이라는 본인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에 관한 한겨레와의 명예훼손 소송 1심에서 패소한 바 있다. 김용원 상임위원도 “내부검토 사항은 비공개로 해도 된다”며 이 위원을 거들었다.



안창호 위원장은 “원활한 토론을 위해서 비공개도 장점이 많다”고 말한 것으로 인권위 직원들은 전했다. 김용직 위원은 “공개가 원칙이다. 잘못된 보도 피해로 비공개하자는 건 과한 주장”이라고 했고, 강정혜 위원은 “비공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고 했다. 원민경·소라미 위원은 각각 “위원들의 발언은 공개적으로 검증되는 게 맞다”, “공인 발언은 공개되고 필요시 비판받아야 한다”고 했다. 김종민 위원은 “인권상황보고서 발간에 반대한다. 그 돈으로 북한 인권보고서 발간하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권상황보고서 안건은 결국 표결까지 간 끝에 6대 4로 비공개 진행하기로 했다. 김용원·이충상·한석훈·강정혜·김종민·이한별 위원은 비공개에, 남규선·원민경·김용직·소라미 위원은 공개에 손을 들었다. 비공개 위원의 수적 우세를 확인한 안 위원장은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고 기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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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제17차 전원위원회를 앞두고 인권활동가들이 서울 중구 삼일대로 인권위 앞에서 전원위 회의 공개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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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법 제14조(의사의 공개)는 “위원회의 의사는 공개한다. 다만,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권위 운영규칙 제9조(회의의 공개 및 방청 등)도 “위원회의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국가기밀, 개인 명예 또는 사생활 등 5가지 단서조항으로 비공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권보고서 발간 안런 단서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날 상정된 2개의 안건은 모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 전원위로 넘겨졌다. 이날 남규선 상임위원은 인권상황보고서 발간 자문위원장으로서 보고서 집필 책임성을 주장했는데, 안 위원장은 “임명 근거가 없어 해임할 수 있다”고 발언하자 남 위원이 “위원장이 어떻게 첫 회의에서 해임을 말하느냐”고 반발하면서 긴 시간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고등학교의 휴대전화 수거로 인한 인권침해’ 건도 긴 시간 끝에 결론을 못 냈다. 전원위는 오후 8시가 돼서야 폐회됐다.



이날 전원위를 지켜본 인권위 한 직원은 “인권위의 역할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탄식했다. 또 다른 직원은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김용원·이충상 두 상임위원이 위원장 뒤에서 발 빠르게 움직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혐오 막말을 쏟아내는 상황을 지켜보는 일이 괴롭다. 인권위가 만들어온 성과들이 빠르게 허물어질 위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지난 2022년부터 인권위법 제29조1항에 따라 한 해 동안의 국내 인권상황을 기술하고, 그에 대한 평가와 개선책을 제시하는 인권상황보고서를 발간해왔다. 올해도 ‘2023년 인권보고서’를 완성한 상태지만, 김용원·이충상 위원 등이 “올해는 별도 예산이 없으므로 발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보고서 내 65개 항목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정 사건이라는 이유로 이전부터 비공개 상정돼온 ‘고등학교의 휴대전화 수거로 인한 인권침해’ 안건에 대해서도 인권활동가들은 비공개로 할 이유가 없다며 공개를 요구했다. 그동안 인권위는 아동 인권권리협약이나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 등을 고려해 등교 시 핸드폰을 일괄 수거하지 말고 수업시간에만 사용하지 못하도록 권고해왔으나 위원들이 교체된 뒤 판단이 바뀔 조짐을 보여왔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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