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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종석 전 장관 “통일 지향하되 ‘잠정적 두 국가’ 현실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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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한겨레와 한 1시간30분 남짓한 인터뷰에서 최근의 ‘통일론’ 논란과 관련해 “장기 과제로 통일을 지향하되, ‘잠정적 두 국가’ 관계의 현실을 인정하고 적대감을 해소하며 평화와 화해협력의 길을 여는 데 우선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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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과제로 통일을 지향하되, ‘잠정적 두 국가’ 관계의 현실을 인정하고 적대감을 해소하며 평화와 화해협력의 길을 여는 데 우선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최근 논란이 된 ‘통일론’과 관련해 26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밝힌 견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선언, “통일이란 자유·인권·법치의 가치를 북녘땅으로 확장하는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8·15 통일독트린’에 “통일, 하지 맙시다”라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언이 뒤엉키며 인식의 혼란이 가중되던 터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1시간30분 동안 이뤄졌다.



―임종석 전 실장과 생각이 같다는 언론 보도가 있던데?



“고민은 이해했는데,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통일은 숙명적인 과제다.”



―평소 ‘통일을 지향하되 두개 국가 분립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주장을 펴지 않았나?



“지금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과제는 평화다. 노태우 정부 이래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 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통일이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장기 과제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통일의 과정이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의 3단계로 구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30년 넘게 화해협력 단계의 입구에서 진퇴를 거듭하고 있다.”



―1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남북 사이 ‘적대적 간섭’의 악순환 고리 때문이다. 화해협력을 하려면 이 고리를 먼저 끊어야 한다. 남과 북이 남남이 아니라는 의식이 상대에 대해 ‘간섭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는 전쟁과 갈등, 불신, 적대적 비난으로 얼룩진 남북관계였다. 남남이 아니라며 남보다 못한 존재로 살아온 이 모순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통일을 지향하되 일단 ‘잠정적 두 국가’ 관계를 인정해 상호 적대행위와 불신행위를 중단하고 ‘쿨하게 살아가자’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뒤 남북이 다시 통일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두 국가’ 관계 앞에 ‘잠정적’이란 수식어를 붙인 건, 장기 과제로서 ‘통일 지향’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실상의 통일’을 강조했듯이, 통일을 완성형이 아닌 과정으로 봐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을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로 선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선언은 ‘영구분단’ 주장이다. 나아가 두 국가 사이의 ‘가장 적대적인 관계’를 재생산하겠다는 주장이다. 둘 다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북한 지도자의 주장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다만 생각해볼 지점은 있다. ‘가장 적대적인 관계’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주장은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는 윤석열 정부에 대응한 측면이 있다. 남쪽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뀌면 달라질 여지가 있다. 반면 ‘두개 국가’ 주장은 북한의 처지를 고려한 김정은 위원장의 오랜 생각이라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북한 최고지도자의 공언이니 우리가 언젠가 대북협상에 나선다면 대북협상에선 현실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북한이 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우리는 통일을 지향한다. 하지만 조선에 통일을 강요할 생각이 없고, 조선 내부에 어떠한 영향이나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공개 입장 정도를 표명할 필요가 있겠다.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논의가 있던 통일부를 ‘평화협력부’로 개칭하는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김정은 위원장은 헌법에서 통일을 지우겠다고 하고, 우리 사회에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낡았다며 변경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 통일방안을 고칠 이유가 없다. 우리에겐 합리적 지향이 있다. 북한 주장에 맞춰갈 이유가 없다. 다만 장기적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고려해 국민 숙의를 거친 업그레이드는 필요하다. 긴 역사의 눈으로 볼 때 북한의 주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30년 전 초당적 합의로 탄생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통일정책의 최상위 개념이자 앞으로 초당적 협력을 가능하게 할 기반이다. 통일정책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보수와 진보가 하나의 모델과 경로를 공유한다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다.”



―헌법 3조 영토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럴 이유가 없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일은 아니지만, 헌법의 영토 조항을 손대지 말아야 할 전략적 이유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선언 하나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지향이 있다.”



―윤 대통령의 ‘통일독트린’은 어떻게 보나?



“북한붕괴론에 기댄 흡수통일론이다. 흡수통일론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지난 30년간 보수 정부가 들어섰을 때마다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북한은 붕괴되지 않았고, 흡수통일론은 적대 해소가 아니라 적대성 강화에 기여해왔다. 지금 북한은 정부나 일부 언론이 말하는 것과 달리 탈냉전 이후 경제·안보적으로 가장 좋은 전략적 환경을 맞고 있다. 북한붕괴론은 윤석열 정권의 희망고문이자 남북관계 중단론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흡수통일의 전제인 북한 급변사태는 비공개 비상계획에서나 다뤄질 사안이지, 정부의 공식 통일정책에서 다뤄서는 안 된다. ”



글·사진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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