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레바논 남부 일대에 불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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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레바논 전역에 폭격을 감행해 민간인을 포함해 2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레바논 남부를 떠나는 피란민의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지상군 진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중동 전역에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양 측의 갈등을 완화하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전면전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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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말살 전쟁” 이스라엘 비난
이스라엘군은 23일(현지시간) ‘북쪽 화살’(Northern Arrows)로 명명된 작전을 통해 레바논 남부와 동부 일부 지역의 헤즈볼라 시설 1600곳에 약 650차례의 공습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레바논 보건부는 24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아동 50명, 여성 94명을 포함해 최소 558명이 사망하고 1835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2006년 7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34일간 치른 2차 레바논 전쟁으로 레바논인 1191명이 숨진 이래 최대 피해 수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떼어놓기 위한 공격”이라고 내각에 공습 의도를 설명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를 구성하는 정규 정당이고,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해 사실상 레바논 전체의 전쟁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공습 뒤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는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공격은 말 그대로 ‘말살 전쟁’(war of extermination)이며, 레바논의 마을과 도시를 붕괴하려는 파괴적인 계획”이라며 “유엔과 영향력 있는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침략을 억제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공습 수 시간 전 이스라엘은 레바논 주민들에게 “헤즈볼라의 무기가 있는 건물에 있다면, 속히 벗어나라”는 아랍어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전송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측이 레바논의 통신 시스템을 해킹해 보낸 것”이라고 전했다. 레바논 경제부처와 문화부 등에선 사무실 전체에 녹음된 메시지가 울려 퍼진 경우도 있었다.
김영옥 기자 |
이스라엘 측은 “공습 지역에서 민간인을 대피시키려는 것”이라고 했지만, “민간인들은 이스라엘이 노리는 목표물에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수단이 없다”(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적도 나온다. 레바논 정부도 전화·메시지 전송이 이스라엘의 ‘심리전’이라고 지적했다. 공포심을 조장하는 한편, 민간인 살상에 대한 면책을 노렸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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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에 피란 행렬 이어져
피라스 아비아드 레바논 보건부 장관은 “이스라엘이 구급차와 병원은 물론 피란민 차량까지 공습했다”고 주장했다. 레바논 측은 구급대원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남부 나바티예에서 응급 구조대원 아부디는 희생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며 “이스라엘이 학살에 학살을 거듭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특히 폭격이 집중된 레바논 남부에서는 안전한 북쪽으로 향해 떠나는 피란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주민들이 내전 중인 시리아로 탈출하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외신들은 수도 베이루트의 도로에도 가재도구를 가득 실은 차량으로 가득하다고 보도했다. 전면전을 대비해 통조림과 기름을 사재기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피란민 중 한 명인 파티마 이브라힘 셰하브는 “공습으로 집이 흔들릴 정도여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AFP에 말했다. 또 다른 피란민 하산 반작도 “집을 떠나지 않으려 했지만, 아이들이 겁에 질려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24일 레바논 남부에서 북부로 피란가는 차량 행렬.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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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의 레바논인들은 피란민들에게 머물 곳을 제공하기 위해 단체 채팅방을 개설하고, 임시 대피소로 학교를 개방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아내와 네 자녀를 픽업트럭에 태우고 베이루트에 도착한 피란민 아부 알리 아마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배고파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가자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에서 9500건의 교전이 벌어지면서, 레바논인 11만명이 피란길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 거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다수 민간인 사상자와 실향민 수천 명이 나온 데에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그는 “레바논이 또 다른 가자지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헤즈볼라의 후원국인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중동에서 확전을 노리고, 이란을 분쟁에 끌어들이려고 덫을 놓았다”며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중동국가들도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에 동참했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 공격”이라며 “레바논을 포함한 아랍 형제들의 편에 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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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공세 수위 높이기로 결정”
그러나 이스라엘은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날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인 “헤즈볼라를 국경 인근에서 멀리 밀어내기 위해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며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필요하면 레바논에서 지상전을 할 준비도 돼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내각이 매일 공세 수위를 높이기로 합의했다는 보도 역시 나왔다. 외신들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레임덕이고, 긴장 고조가 강경파로 연정을 꾸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생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라 미국의 제지가 제대로 먹히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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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수습에 미 정부는 구체적인 규모는 밝히지 않은 채 중동에 소규모 병력을 증파했다고 밝혔다. 우방국인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차원이지만, 이스라엘을 향한 불편한 속내도 털어놨다. 미 외교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분쟁 축소를 위한 일시적 확전이 근본적 상황 안정으로 이어졌다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 대대적인 공격으로 헤즈볼라의 세력을 약화시켜야 ‘블루라인’으로 불리는 레바논과의 국경이 안정된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비판했다.
미 CNN은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재앙적인 전쟁(catastrophic war) 직전으로 다가왔다”고 우려했고, 로이터 통신은 “만일 전면전이 발생한다면 가자지구 전쟁에 더해 중동 지역 전체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인 애런 데이비드 밀러는 PBS와 인터뷰에서 “자국민과 공공시설에도 막대한 피해가 있어 이스라엘도 전면전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현재와 같은 대규모 공습은 계속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 교전이 격화되는 가운데 24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이사회(NSC) 국가안보 소통보좌관은 ABC 방송에 나와 자국민에게 레바논을 서둘러 떠나라고 권고했다. 커비 보좌관은 "미국인들이 떠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민간 선택지가 아직 있다. 이를 이용할 수 있을 때 지금 (레바논에서) 떠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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