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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자존’의 공간을 위하여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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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홈리스공존할권리팀 활동가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7월3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들머리에서 서울역 앞 지하보도에 머무는 거리 노숙인들을 강제퇴거 조치한 서울스퀘어 소속 보안요원을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에 홈리스가 사회에서 공존할 권리를 보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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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호 | 이슈팀장



연휴를 맞아 평소 틈날 때 그렇듯 지역 아무 도시나 택해 여행했다. 어느 곳이든 움직여 닿을 수 있고 머물러도 별달리 내쫓길 일 없는 처지라는 것, 공간은 대개 ‘그저 펼쳐져 있을 뿐’이라는 감각은 곱씹을수록 소중한 것이었고, 그래서 놓칠까 두려운 것이기도 했다. 두개의 기사로 생각이 이어졌다. 부자유한 움직임과 제약당한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안도는 이내 두려움으로 덧칠됐다.



‘시각장애인 장성일(44)씨가 지난 4일 자신이 운영하던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안마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김채운 기자가 ‘안마원 운영 5년 만에 ‘부정수급’ 낙인…시각장애인 결국 숨져’ 기사에 적었다. 가장 익숙하고 소중한 공간에서 장씨는 세상을 등졌다. 부자유한 움직임이 배경에 있다.



장씨는 사망 직전 ‘일하는 데’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활동지원 급여가 환수될 수 있다’는 행정기관의 통보를 들었다. 시력을 잃어 도움이 필요한 업무 일부를 활동지원사에게 맡긴 게 화근이었다. 장애인활동지원 제도가 이르는 지원 가능한 ‘활동’ 범주에 장애인 자영업자의 노동은 들지 않는다.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누군가는 짐짓 ‘어쨌든 법을 어긴 것’이라고 이를 수 있다. 장씨 유서와 주변의 증언은 그 구체성으로 말미암아 가슴 아픈 항변이 된다. ‘내 힘으로 가족 셋을 책임지겠다’며 고생스럽게 꾸린 공간, 안마원에서조차 그의 움직임은 제약됐다. 안마 자체야 그럭저럭 해낸다 해도 가게를 정리하고, 손님에게 돈을 받아 액수를 확인하고, 정산하는 몸짓 하나하나 벽에 부딪혔을 것이다.



움직임의 부자유를 다소나마 풀어줄 제도들(활동지원, 업무지원, 근로지원)은 그 복잡함 탓에 불법과 합법을 수혜자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애초 지원 규모 자체도 불충분하다. 장씨는 존중받는 모범 시민의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길 갈망했다고 한다. ‘부정수급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삶을 부정당한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장씨 누나는 전했다.



익숙한 안마원조차 자유롭게 움직일 지평이 되지 못한 장씨의 죽음 이면에서, 홈리스들은 머물 공간을 잃고 이동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고나린 기자가 쓴 ‘지하보도서 쫓겨난 홈리스…“공공 공간 아닌가요?”’ 기사는 그 사정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전한다. 서울역과 그 앞 대형 상업 건물 서울스퀘어를 잇는 지하보도에서 홈리스가 쫓겨나는 상황이 1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쫓아내는 이는 관리 주체인 행정기관조차 아니다. 서울스퀘어 쪽의 자의적 제재였다.



‘영업에 방해가 되니 어쩔 수 없다’는 반론 앞에, 홈리스 당사자 로즈마리(활동명)는 “매번 ‘이동하라’는 말을 듣는다”고, “그 말만 들어도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적정 주거를 보장하는 공공의 역할은 미비하다. 집이 없어 거리로 이동했다. 서울 땅과 건물은 대개 주인이 있고 머물려면 돈을 지불해야 했기에, 또다시 이동했다. 그나마 모두의 공간인 지상의 거리와 광장은 삶이 날것으로 노출돼 위험했기에 또 이동했다. 그렇게 찾은 공공 지하보도조차 상업 시설과 연결돼 있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이동하라”고 종용당했다. 로즈마리는 서울스퀘어 경비인력에게 폭언을 들으며 쫓겨난 동료 홈리스의 마음을 전했다. “그 사람 나름의 자존심도 있었을 겁니다.”



연휴가 끝난 20일, 전국을 향해 이동하는 기차와 분주한 움직임이 여전한 서울역 앞에 고 장성일씨의 추모분향소가 마련됐다. 막아선 한국철도공사와 6시간 씨름한 끝에 24일까지 제한적으로 분향소 운영이 허용됐다. 그로부터 한층 아래 서울역 지하보도에선 ‘화목한 지하도’라는 이름을 내걸고 홈리스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머물 곳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간다. 근본적 해결은 난망하다. 움직이고 머무는 데 거리낄 게 없어 ‘공간은 그저 펼쳐져 있을 뿐’이라는 감각을 되찾기 위한 싸움은, 때로 목숨보다 귀한 자존심을 걸고 험난하게 이어지고 있다.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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