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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귀족부인 앞에 무릎 꿇은 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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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건희 여사가 지난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선수단 격려 오찬’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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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현|논설위원



연휴에 발자크의 소설 ‘골동품 진열실’을 읽었다. 대혁명을 거치며 검찰 제도를 포함한 현대적 사법체계의 기틀을 세운 프랑스, 그 태동기 사법제도의 실제 현실에 대한 궁금증에 이끌려 고른 책이었다. 법 이론과 실무에 해박했고 50명이 넘는 법률가를 작품에 등장시킨 이 ‘법의 소설가’가 포착한 200년 전 프랑스 사법 현실은, 엉망진창이었다.



방탕한 생활로 큰 빚을 지게 된 귀족 청년 빅튀르니앵이 어음 위조 행각을 벌이다 고소당하지만 귀족 권력의 뒷배와 비열한 술수를 통해 무죄 방면된다는 게 소설 속 사건의 얼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인물이 빅튀르니앵의 연인인 드 모프리뇌즈 공작 부인이다. 국왕과도 친분이 있는 그는 예심판사(수사·기소를 담당하는 우리나라 검사와 유사한 사법관) 카뮈조에게 승진을 약속하며 사건을 덮게 한다. 공작 부인 한 사람의 사적 이해가 사법체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출세의 갈망에 눈먼 사법관이 그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 있는 게 당대의 법 현실이라고 발자크는 기록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놀랍도록 유사한 지금 이곳의 현실이 자꾸만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의 비정상을 설명할 길은 김 여사가 ‘지체 높으신 대통령 부인’이라는 사실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시공간의 격차만큼 디테일은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드 모프리뇌즈 부인은 남장을 한 채 예심판사를 찾아가 회유·압박을 했고, 김 여사는 검사들을 불러 휴대전화를 내놓게 한 뒤 조사받았다. 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신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형사사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으로 전근대의 악취는 풍겨나기 때문이다.



혁명을 통해 탄생한 새로운 법은 법 앞에 특권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정의로운 법이었으나, 소설의 배경이 된 왕정복고라는 반동의 시대에는 사법관들이 다시 귀족들에게 빌붙어 법의 정신을 배신했다. 이러니 귀족 빅튀르니앵은 “법정을 자신에게는 전혀 영향력이 없는, 민중에게 겁을 주는 허수아비 정도로 여겼”고 “평민이라면 비난받을 일이 그에게는 허용될 수 있는 재밋거리”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발자크의 이 묘사는 마치 지금 이곳의 세태를 그리는 듯하지 않은가.



불문학자 송기정 교수의 논문 ‘발자크 소설에 나타난 민사·형사 사건’을 보면,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또 다른 소설 ‘창녀들의 영광과 비참’에는 더욱 극단적인 장면이 나온다. 드 모프리뇌즈 부인의 도움으로 파리의 요직에 진출한 카뮈조 예심판사가 또 등장하는데, 그는 한 살인·절도 사건의 진상에 대한 자백을 받아낸 참이었다. 그런데 피의자를 보호하려는 세리지 백작 부인이 찾아와 그 조서를 빼앗아 불 속에 던져버린다. 이는 명백한 범죄 행위임에도 카뮈조와 검사장 그랑빌은 어이없게도 그냥 웃어넘기고 만다. 발자크는 “이렇듯 심각한 범죄는 예쁜 여인의 웃음거리로 변해버렸다”고 썼다.



또 연상되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주가조작에 연루된 숱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김건희 여사 기소를 하염없이 미루는 것은 조서를 불에 던져 넣는 것과 어떤 본질적 차이가 있을까. 말로는 ‘국민의 검찰’을 내세우면서 실상은 ‘김건희의 검찰’이 된 21세기 한국 검찰을 발자크가 관찰한다면, 법을 조롱하는 역사상 가장 신랄한 소설을 써내고도 남지 싶다.



왕정복고 당시에도 형식적 법치는 이뤄졌다. “왕이 그 왕국의 일개 예심판사에게도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을 “새로운 법의 위대함”이라고 발자크는 그랑빌 검사장의 입을 통해 말했다(물론 오지랖 넓은 귀족 부인들의 노골적인 사법방해를 막지는 못했지만). 이 점에서 우리는 두 세기 전 프랑스의 왕정보다 후진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검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시대이며, 대통령이 자신과 부인이 관련된 특검법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부권을 휘두르는 시대가 아닌가. 이 정도의 사법적 개입은 발자크 시대의 왕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법적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왕정국가, 혹은 그 이상으로 퇴행했다는 점, 권력에 빌붙는 검찰의 행태 또한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점, 민주공화국에서는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법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을 발자크 덕에 더욱 선명히 각인할 수 있었다.



‘골동품 진열실’은 1830년 시점에서 이야기를 끝맺는데, 그해 7월혁명으로 복고왕정은 종말을 맞았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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