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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뻔뻔하다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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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건희 여사가 19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공식 방문에 동행해 출국했다. 이날 성남 서울공항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배웅을 받으며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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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낭창낭창한 목소리와 초롱초롱한 눈매로 멋지게 발표를 하면, 나는 “뻔뻔하게 발표를 잘한다”고 칭찬한다. 웃는 얼굴로 말하니 기분 좋게 앉지만, 썩 좋은 표현은 아니다. ‘뻔뻔하다’는 말은 ‘잘못이 있어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뜻이니, 학생은 뻔뻔한 게 아니다. 자신감 넘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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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이 발동했기 때문이려나. 나는 부끄러움이 많아 상대방 눈을 보며 말하지도 못했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건 가루약 먹는 것보다도 싫다. 지금도 피할 수 없으면 미리 원고를 써가서 코를 박고 읽는다. 어눌하고 딱딱하니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일쑤. 옹졸하고 비겁하여 뭐 하나 잘못한 게 있다 싶으면,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뻔뻔한 사람이 ‘부럽다’! 개구리가 파리 잡아먹듯이 돈을 날름날름 해먹거나 아랫사람에게 대신 글을 쓰게 하는 사람이 부럽다. 한 줌 권력을 사리와 사욕을 채우는 데 쓰는 이들의 승승장구가 부럽다. 비리와 탐욕이 들통나도, 평정심과 고운 자태를 잃지 않는 모습이 정말 부럽다.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는 마음이야 누구에겐들 없겠나. 그 마음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게 능력이지. 자기한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면 뻔뻔할 수 없다. 잘못이 없거나 타인이 모를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뻔뻔할 수 있다.



그래서 뻔뻔함은 숨기지 못한다. 드러난다. 특히, 얼굴에.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의 ‘후안무치’나 ‘쇠로 만든 낯가죽’이란 뜻의 ‘철면피’란 말도 얼굴에 드러난 뻔뻔함에 주목한다. ‘체면’ ‘면목’이나, ‘낯 두껍다’ ‘낯 부끄럽다’란 말도 ‘얼굴’이 사람 됨됨이가 드러나는 통로라는 걸 보여준다.



지금은 뻔뻔한 세상. 반면교사로 삼기보다는 함께 검게 물들고 있다. 근묵자흑.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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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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