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호주머니서 연이어 '펑펑'…'삐삐' 폭발에 레바논 '공포'

/AFP=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레바논 전역에서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무선호출기(삐삐) 수백 대가 동시에 폭발해 수천 명이 죽거나 다치면서 나라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가방이나 호주머니, 혹은 손에 있던 호출기가 폭탄으로 변해 터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 주민들은 공포에 질렸다.

한순간에 눈과 손을 잃은 환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병원들은 아수라장이 됐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30분쯤부터 레바논 전역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선호출기 수백 대가 동시에 폭발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폭발로 최소 9명이 숨지고 2750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레바논 보건부를 인용해 부상자 가운데 약 200명은 위독한 상태라고 전했다.

1990년대 '삐삐'로 불리며 널리 쓰였던 무선호출기는 간단한 문자메시지와 전화번호를 수신하는 통신기기다.

헤즈볼라는 휴대전화가 위치추적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최근 몇 달간 호출기를 도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폭발은 레바논 남부와 동부 베카밸리,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등 헤즈볼라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SNS에 올라온 영상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어둔 호출기에서 몇 차례 경고음이 나왔다.

헤즈볼라 당국자들에 따르면 폭발 직전 호출기에는 헤즈볼라 지도부가 보낸 메시지로 보이는 알림이 떴다고 NYT는 보도했다.

이 알림은 그러나 폭발을 활성화하는 신호였고, 곧이어 수백 대의 호출기들이 폭발했다.

이날 레바논의 한 가게에서 찍힌 CCTV 영상에는 과일 등을 사고 있던 한 남성이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호출기가 터지고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담겼다.

폭발이 주로 발생한 베이루트 남부 교외 주민들은 주변에서 갑자기 폭죽이 터지는 것과 같은 폭발음이 들린 뒤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고 전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손이나 얼굴, 복부를 다쳤으며 열 손가락을 모두 잃거나 두 눈이 심각하게 다친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쏟아지는 환자에 병원들은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늦은 밤까지도 병원 밖에는 초조하게 경과를 기다리는 환자 가족들로 장사진을 이뤘으며 의사가 부족해지자 인근 수의사와 약사, 치과의사들까지 치료에 동원됐다.

레바논 전역의 적십자사 사무소에는 치료에 필요한 피를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눈앞에서 수많은 이들이 폭발로 쓰러지는 것을 본 주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의 휴대전화도 터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BBC는 잦은 분쟁으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레바논에서도 이날 벌어진 사건의 규모와 성격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전했다.

지정용 기자(jjbrave@chosun.com)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뉴스제보 : 이메일(tvchosun@chosun.com), 카카오톡(tv조선제보), 전화(1661-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