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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서울 온 체니 부통령, 미 대사관 이전 문제에 불만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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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

노무현 탄핵 직후 방한, 갖은 억측 불러 일으켜

17대 총선 다음날 고 건 대통령 대행과 회담

“좁고 불편하니 대사관 이전 협조해 달라” 요구

3주 후 “캠프 코이너로 확정” 발표에 美 반발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분야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전 세계 이목이 쏠리고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근 주목받은 정치인은 딕 체니(83) 전 미국 부통령입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과 함께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됐던 ‘네오콘((NeoCon·신보수주의)’의 대표격인 그가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밝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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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지난 2018년 5월 16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체니 전 부통령은 “미·북 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바라지만 실패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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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에서도 강경파로 꼽혔던 그는 같은 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며 “248년 미국 역사에서 트럼프보다 우리 공화국(미국)에 더 큰 위협이 되는 인물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트럼프는 유권자들이 자신을 거절한 후에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과 폭력을 사용해 지난 선거를 훔치려고 했다”며 “우리 모두는 시민으로서 당파보다 국가를 우선시하고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하자 이에 불복,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로 작년 8월 기소됐음에도 출마한 것을 비판한 겁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즉각 체니를 ‘라이노(RINO·Republican In Name Only·허울뿐인 공화당원)’라고 부르며 반발했습니다. 해리스는 반색을 하며 환영했습니다.

1980년 이후 역대 미국 부통령 중에서 존재감이 있었던 인물로 클린턴 행정부의 앨 고어 부통령과 함께 부시 행정부의 체니를 꼽을 수 있지만, 권력 측면에서는 체니가 단연 앞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체니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네오콘에 기반한 정책을 주도, 대통령의 눈치나 보면서 존재감이 없었던 미국 부통령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킨 인물로 꼽힙니다. 네오콘은 세계 최대 패권국인 미국이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전 세계 문제에 깊이 개입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란·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부르며 힘에 의한 대응을 주창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2008년 워싱턴 포스트의 탐사보도 ‘앵글러(낚시꾼) 체니 부통령’이 퓰리쳐상을 받은 것은 체니의 권력과 영향력이 지대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시리즈는 당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체니의 영향력과 그가 미국 정부 내에서 행사한 권력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다뤄서 주목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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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워싱턴 포스트의 탐사보도 ‘앵글러(낚시꾼) 체니 부통령’이 퓰리쳐상을 수상한 후, 책으로 만들어졌다.


◇체니 부통령, 노 대통령 탄핵중인 2004년 방한

공화당원인 체니가 박빙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소신에 따라 민주당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기로 한 기사를 접하면서 그의 2004년 3월 방한을 특종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야간 취재를 통해 한 소식통으로부터 “체니 부통령이 방한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그의 방한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그 말에 무게를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직전인 3월 12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돼 대통령 공백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혼란한 상황에서 과연 미국 부통령이 방한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확인 취재를 하다가 그의 방한이 양국 간에 비공개리에 논의되고 있음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데스크에 보고, 조선일보 2004년 3월 19일 자 1면에 체니 부통령 방한 기사를 썼습니다.

딕 체니<사진> 미국 부통령이 우리 정부 초청으로 다음 달 15일쯤 방한(訪韓)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날 “체니 부통령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의 한·미 협력방안을 비롯해 용산 미군기지 이전, 미 2사단 재배치, 주한미대사관 신축부지 문제 등 양국 간 주요 현안에 대해 우리 정부 관계자들과 논의하기 위해 4월15일 방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딕 체니 부통령은 방한 기간 중 고건(高建) 대통령 권한대행과 만나 한·미 양국간 주요현안을 협의하고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과도 만날 예정이다. 체니 부통령은 당초 작년 4월 방한키로 했다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3월에 시작됨에 따라 방한을 취소했었다. 체니 부통령의 방한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이전부터 추진돼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의 ‘체니 미 부통령 방한’ 특종은 여러 측면에서 억측을 낳았습니다. 왜 조선일보가 노 대통령 탄핵 중 미 부통령이 방한하는 기사를 썼는지, 그 배경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17대 총선이 실시되는 4월 15일 체니가 방한할 것으로 알려져 탄핵 정국과 총선 등 국내 정치 상황과 연계시켜보려는 정치적 해석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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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된 직후, 딕 체니 미 부통령이 방한한다는 사실을 전한 조선일보 2004년 3월 19일자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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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외교부는 “체니 부통령 방한은 탄핵안 가결 이전부터 추진돼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체니 부통령의 방한 일이 총선일과 겹친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의도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중국, 일본 등 3국 순방 일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 방문이 ‘우연히도’ 15일로 잡혔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그동안 한반도문제 협의를 위한 고위 관리의 동북아지역 방문외교 때 한·중·일을 함께 순방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체니는 국방장관 시절인 90년 2월 14일부터 4일간 한국을 방문한 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90년대에 비해 한·미 동맹관계에 갈등요인이 많이 생겨난 후의 서울을 직접 찾아 의견을 청취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체니의 방한을 준비하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처리가 4월 15일 전까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노 대통령 예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무척 신경을 썼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3월 12일 탄핵안 가결 직후 미국 측에 이 같은 사정을 설명하면서 “그래도 방한을 원하는가”라고 문의하자 미국 측은 “괜찮다”며 예정대로 방한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민거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탄핵 파동이 없었다면 체니는 노 대통령을 예방하고, 카운터파트인 고건 총리와 주요 현안에 대해 협의를 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탄핵사태로 고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체니와 오찬을 겸한 회담을 하게 되면서 정부 관계자들은 회담내용과 의전문제 등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고 대행이 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말까지 다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권한대행’ 총리에 걸맞은 수준에서 할지를 걱정했던 겁니다.

◇고 건 대행, 열린우리당 총선 승리 다음날 체니와 회담

예정대로 4월 15일 체니가 방한했습니다. 그날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299석 중 152석을 차지하며 과반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한나라당은 121석으로 완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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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2004년 4월 16일 방한중인 딕 체니 미 부통령과 회담을 갖고 있다.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과 토마스 허바드 주한미대사 등이 배석했다./e영상역사관


고건 대행은 다음날인 16일 총리공관에서 1시간 30분 동안 오찬을 겸해 체니와 회담을 갖고 “총선을 통해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안정의석을 확보한 것은 국내정치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며 “이를 바탕으로 참여정부가 지금까지 추구해 오던 외교안보정책을 변화없이 강력하게 추진할 바탕이 마련됐다”고 했습니다. 또 “참여정부의 시장경제와 경제정책기조는 변화가 없으며, 50년 한·미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체니는 “(탄핵사태 이후) 한국의 안정된 상태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받고 있다. 특히 총선이 안정적으로 추진된 것은 한국 국민의 강화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라크 사태와 관련, 체니 부통령은 우리나라의 추가파병에 대해서 사의를 표명한 후, “이라크에 대한 한국의 기여에 대해 한국 내에서 논쟁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민주적인 대의민주주의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세우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도 했습니다.

◇ 뒤늦게 쟁점된 미 대사관 부지 문제

그런데 체니가 회담을 마치고 간 후부터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던 사안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체니가 고 대행에게 미국 대사관 이전 문제를 거론, “건물이 너무 작고, 오래됐으며 필요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문제가 많다”며 불만을 토로하며 우리 정부에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는 겁니다.

사실 주한 미국대사관의 이전 문제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부터 미 행정부는 미국의 위상에 비춰볼 때 현재의 세종로 건물은 낡고 보안에 문제가 많다며 이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미국은 주한미국대사 관저와 맞붙은 옛 경기여고 부지를 선호했으나 문화재 문제로 사실상 좌절됐습니다. 이후 진전이 없자 체니가 방한 중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톤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체니가 떠난 후 약 3주만인 5월 초 정부는 주한 미국 대사관 신축 부지로 당초 거론되던 옛 경기여고 부지 대신 용산 미군기지 내 ‘캠프 코이너(Camp Coiner)’를 대안으로 사실상 확정했습니다. 고 대행은 5월 4일 기자들과 만나 “미 대사관이 용산의 ‘캠프 코이너’로 (신축) 이전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옛 경기여고 부지와 캠프 코이너를 맞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딕 체니 부통령이 지난달 방한했을 때 정부가 대사관 부지로 종로구 송현동 일대를 제시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정부는 송현동 부지를 제시했으나 미국 측에서 꼭 서울의 사대문 안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입장이었고, 따라서 그 문제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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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2004년 4월 16일 방한중인 딕 체니 미 부통령과 식사를 하면서 건배하고 있다./e영상역사관


이에 따라 용산기지 이전과 함께 주한 미 대사관을 신축할 경우, 서울 세종로에 있는 주한 미국 대사관은 이르면 2008년쯤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이를 반박하는 입장이 나왔습니다.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은 모린 코맥 공보관을 통해 “체니 부통령이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과 만나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을 대사관 신축 담당자도 알지 못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코맥 공보관은 “주한 미 대사관은 옛 경기여고 부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말 외에는 언급할 내용이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고 대행이 캠프 코이너 부지에 미 대사관을 짓는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겁니다.

그후 지난 20년간 주한미대사관 이전 문제는 사실상 아무런 진전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대로라면 상당기간 동안 주한미대사관은 세종로를 못 떠날 것이 분명한데, 미 대사관 문제가 원만히 풀려가지 않으면 장차 한미간의 갈등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하원 외교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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