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부부가 둘 다 놀고 먹고 씁니다]
올해 가장 맛있게 먹은 밥
'잇투개더' 참여자들이 만든 반찬을 즐겁게 담고 있다. /윤혜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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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으로 이사한 뒤 서울과 두 집 살림을 하며 집에서 밥을 해 먹은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동네의 소박한 밥집과 술집 리스트는 풍성해졌다. 밥은 집밥이 최고라지만 내게 집밥만큼 좋아하는 밥상이 있다. 올해 최고로 맛있게 먹은 밥은 봉사 활동을 하고 난 뒤 먹은 밥이다.
2022년부터 우리 부부는 노인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모임 ‘프란치스코의 이웃’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 봉사 모임은 천주교 신자인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이끄는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에서 운영하고 모 수녀회가 힘을 보탠다. ‘프란치스코의 이웃’은 2021년부터 매주 2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거노인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배달한다. 제철 채소 반찬은 물론 동물성 단백질 음식도 챙겨, 드시는 분들의 영양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식단을 짠다. 김장철엔 김장 김치를, 명절엔 명절 음식을 당연히 챙긴다.
이 활동에는 우리가 대장이라고 부르는 박용만 회장을 비롯하여 기업 경영인, 자영업자, 요리사, 방송인, 작가, 주부, 은퇴 교수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참여한다. 그러나 이들은 부엌에 들어서는 순간 그저 형제님, 자매님으로 서로를 부르며 궂은일을 찾아서 하는 봉사자일 뿐이다. 심지어 올해로 3년째 한 달에 두세 번씩 만나 같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나는 같이 봉사하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부자인지 아닌지, 정치색은 어떤지도. 이곳에선 그저 식재료를 야무지게 손질하는 사람, 칼질을 노련하게 하는 사람, 깨끗하게 설거지하는 사람으로만 구분된다. 이 사람들이 한 달에 여덟 번, 모일 때마다 120~130가구에 반찬을 만들어 나누었고 최근엔 이 그릇들이 모여 5만 식이 되었다.
반찬을 만들어 정갈하게 포장을 마치면 비로소 우리도 밥을 먹는다. 그날 우리가 만든 반찬을 뷔페식으로 차려 먹는데 이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간혹 내가 봉사를 하러 가는 것인지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남편도 같이 참여하는데 남편은 같이 일하는 봉사자들 보기 창피할 정도로 밥을 많이 먹는다. 내가 밥을 안 차려줘서 저러나 의심받을까 봐 걱정이다.
'프란치스코의 이웃'으로 봉사하며 생선에 열심히 전분을 묻히는 남편 편성준씨. /윤혜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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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면 우리는 저마다 배달용 가방(배달 업체에서 사용하는 보랭 배낭)에 우리가 만든 반찬을 담아 노인들을 찾아뵙는다. 일주일에 두 번 늘 비슷한 시간에 방문하니 노인들은 간단하게 밥상을 차려두고 우리를 기다리시기도 한다. 그분들은 당신들의 끼니를 챙기는 우리에게 굽은 허리를 더 굽혀 고맙다고 인사를 하신다. 그런데 그분들은 아실까? 그분들이 고마워하시는 마음보다 찾아뵐 때마다 여전히 건강을 지키고 계신 어르신들을 만나는 우리가 더 큰 힘을 받고 행복하다는 것을.
어떤 의도 없이 타인의 끼니를 챙기는 일은 보람되기도 하고 행복하다. 음식 탐험가 장민영씨가 이끄는 ‘잇투개더(인스타그램 @eat2gather)’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의 식사를 챙긴다. 이 모임은 2017년에 장씨가 또래 요리사들과 시작했다. 처음엔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에게 ‘대접받는 식사’를 경험시키고 ‘밥이 주는 힘을 나누는 활동’으로 그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차려준 밥을 먹은 수감 청소년들의 표정과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 걸 보고 봉사자들이 더 감동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 주방에서 반찬을 만들고, 무료 급식장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거동이 어려운 분들에게 배달한다.
탄핵 정국에서 아이돌 스타들의 역조공(연예인이 팬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화제였다. 정치적 이슈에 찬반을 표시하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거리에서 춥고 배고플까 봐 김밥과 커피 등을 선결제하는 방식으로 끼니를 챙긴 것이다. 만나면 “안녕하세요?”만큼이나 “식사하셨어요?”라고 묻는 우리들이다. 이 인사는 진심으로 안부를 묻는 마음이며 염려하는 목소리다. 보령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우리 부부의 봉사활동 참여가 현저히 줄었다. 그럼에도 내년에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참여해 어르신들의 끼니를 챙기고 어르신들의 허리 굽은 인사도 받으며 맛있게 밥을 먹고 힘을 얻을 것이다. 나의 끼니를 챙기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타인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다. 새해에는 여러분도 꼭 경험해 보시라.
[윤혜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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