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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북한에 남은 아빠가 남긴 한마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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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강성곤의 뭉근한 관찰]

엄마·오빠와 탈북한 옥희씨

남한에서 꿈을 이루기를

조선일보

북한 양강도 혜산시를 굽이쳐 흐르는 압록강. 탈북한 이옥희(가명)씨의 고향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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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안팎의 그녀. 정확한 나이는 밝힐 수 없다. 보안 때문이다. 영어 학원 근처 카페에서 어렵사리 만났다. 토익 수업이냐고 물었더니 아이엘츠(IELTS)란다. 영연방 국가에 취업이나 이민을 하기 위한 영어 시험이라며 요즘 각광 받고 있다고. 무식이 들통나는 순간, 요즘 들어 잦다.

이옥희(가명)씨. 한국장학재단의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알게 되었다.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자녀가 주 대상. “말하기-글쓰기 스킬업” 멘토 자격으로 멘티 8명을 선발했는데 비고란에 적힌 ‘북한 이탈 주민’이 눈에 띄었다. 4월부터 진행해 온 회합에서 결석⸱지각 한 번이 없다. 따로 날을 잡아 탈북 이야기를 듣고 싶다 했고 승낙을 받아 이뤄진 자리.

어느 날 엄마가 사라졌다. 몇 년 지나서야 연락이 닿았다. 탈북했노라고. 조만간 데리러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무서웠다. 죽을지도 모르고, 다른 세상에서 산다는 게 두려웠다. 엄마가 직접 압록강 저편에 나와 있겠다 하고, 오빠가 함께 간다는 게 두려움을 덜어주었다. 9월 한밤중 압록강 풀숲. 아무것 없이 평상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수심이 깊은 데를 골랐다. 물이 가슴팍까지 오르지만 대신 강폭이 좁아 도강(渡江) 거리가 짧기 때문. “엄마!” 포옹도 잠시, 곧장 도보로 이동했다. 버스와 지프차에서 쪽잠을 자고, 중국⸱라오스⸱베트남 국경에서 아슬아슬한 검문을 통과하고, 태국 공항을 거쳐 3개월 만에 자유 대한의 땅을 밟았다. 탈북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를 언급하니, 옥희씨는 그게 통상적인 탈북 루트이고 브로커의 신분은 다양하다고 들었다고 했다.

탈북민은 초기에 중국 공안에게 붙잡힐 확률이 80%. 안 잡히더라도 연락책이 문제가 생기거나 배신하거나, 또 경유지에서 일정이 엉키면 남쪽 오는 데 2~3년이 걸리기도 한다.

남한에 도착해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왜 가족을 버리고 갔느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서운하더라도 몰래 탈출해 돈을 마련하고 나중에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는 게 엄마의 대답. “엄마는 멋진 분이고요, 기가 참 세죠. 제겐 엄마이자 영웅이에요.” 옥희씨가 뿌듯해하며 처음으로 웃는다.

그러나 아빠는 이북에 남았다. 직업을 묻자 특정하기 쉽다며 ‘인텔리’라고만 한다. 아빠가 혹시 당국의 핍박을 받거나 감시⸱사찰 대상 아니냐고 물었다. “몇 달 전 통화했는데 말씀이 없으세요.” 아빠는 세 식구만이라도 잘 살라고 할까, 아니면 하루빨리 자신도 데려가라는 입장일까. 그녀 눈에 이슬이 맺힌다. “딱 한마디 하시고 전화 끊으셨어요.” 어떤 말? “보고 싶다.”

옥희씨는 과거 식으로 치면 함경도 아가씨다. 지금은 양강도 땅인 혜산(惠山) 출신. 압록강과 두만강이 교차해 양강(兩江)이고, ‘은혜로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혜산이다. 북중 접경, 인구 20만 도시로 백두산을 품고 있다. “어느 날 무슨 기운에 이끌리듯 백두산엘 갔어요. 새파란 천지의 물빛에 엄마 얼굴이 어른거렸죠, 신기한 게, 한 달 후 엄마와 상봉했어요.”

초⸱중⸱고를 고향서 나오고 대학은 안 갔는데 탈북 시점까지 5~7년 공백이 궁금했다. 눈빛이 흔들리며 좀체 말하려 하지 않다가 작은 소리로 고백한다. “군인이었습니다, 여군! 내 한 몸 건사해서 자립해서 살 수 있으니까요.” 병과는? “초병. 철책⸱참호에서 경계⸱감시를 했죠.” 인민군 초병 출신의 옥희씨라 중국과 북한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기 유리했을까? 서글픈 아이러니다.

북에 있을 때, 남한이 훨씬 잘산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알게 된단다. 보통 USB로 받아 모니터로 남쪽 영화나 드라마를 접하게 되는데 사람들 옷차림과 거리 풍경으로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고. 남쪽 와서 가장 좋은 건 무엇일까. 일말의 주저도 없이 노력한 만큼 결과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거라고 힘주어 말한다. 옥희씨 엄마는 중국과 남한서 10여 년을 살면서 공장⸱식당⸱청소 일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보이스피싱부터 대출과 중고차 관련 사기도 수차례 당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탈북민 대상 범죄가 무척 많다고. 분노할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정을 찾았다. 오빠는 지방 소재 중소기업 엔지니어, 옥희씨는 모 대학 간호학과 2학년 재학 중으로 졸업 후 해외 취업을 꿈꾼다.

탈북민은 통일의 물꼬요 밑거름이다. 평화⸱인권 운운하며 북향민(北鄕民)은 홀대⸱괄시하는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을 본다. 자가당착이요 자기기만이다. 어질고 성실한 우리 겨레에게 70년 분단의 굴레는 고통이 너무도 크다. 부디 이 이산가족이 완전체를 이루길. 덧붙여 기도비닉을 끝내고 국제간호사 꿈을 이루는 날, 이옥희씨의 진짜 이름을 마주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강성곤 KBS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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