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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선수 몰래… ‘후원금 배분’ 없앤 배드민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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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발표… “김택규 협회장 취임 후 20% 규정 삭제”

조선일보

안세영이 지난 8월 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아레나 포르트 드 라샤펠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단식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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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배드민턴협회가 후원금 일부를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배분하는 규정을 임의로 없애고, 후원사가 선수에게 직접 지급했던 보너스도 협회가 받는 것으로 바꾸는 등 운영 과정에서 각종 난맥상이 대거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 김택규 협회장이 정부 보조금을 받아 시행하는 사업에서 용품 업체 계약 대가로 물품 후원을 받아 자신이 몸담던 지역 협회에 몰아주기까지 했다. 협회 임원들이 후원사 유치 명목으로 규정을 어기고 보수를 챙기는 등 일탈도 잦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22)이 협회 운영 체계를 비판한 이후 착수한 조사였다. 배드민턴협회 부정 행위 정황이 다수 드러나면서 수사 등 추가 조치도 들어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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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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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물품 유용에 내부자 거래까지

김 회장은 연간 42억원 정부 보조금을 받는 사업에 필요한 용품(셔틀콕 등) 구매 계약을 후원사(요넥스)와 체결하고, 그 대가로 물품을 추가 후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페이백’인 셈. 이 과정에서 1억5000만원어치 물품을 받고 자신이 몸담았던 충남배드민턴협회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5283만원 상당 물품을 배정했다. 가장 적은 곳은 2만7000원어치(경남)에 불과했다. 문체부는 협회가 현재도 공급 물량 일부를 목적과 무관한 대의원 총회 기념품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김 회장이 횡령과 배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모 부회장 등 임원들은 국제 대회 후원사를 유치하는 데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1인당 800만~3000만원을 성공 보수로 받았다. 그러나 협회 정관에는 임원은 보수를 받을 수 없다. 협회는 회계 자문료로 A회계법인에 1600만원을 지급했는데 이 회계법인은 협회 감사가 대표로 있는 곳으로, 임직원이 운영하는 업체와 거래할 수 없다는 국고보조금 관리 지침을 어긴 것이다. 2000만원 넘는 물품 구매 계약을 하면서 공개 입찰을 하지 않고 후원사와 수의계약을 맺은 사실도 나왔다.

40명에 달하는 협회 임원들은 직무 수행 경비나 회의 참석 수당 등 명목으로 3년 반 동안 협회 예산 3억3000만원을 타갔지만 협회 운영을 위해 낸 기부금은 2300만원(김 회장)에 불과했다. 김모 전무이사는 ‘사무실 방문 결재’ 등을 이유로 건당 15만원을 지급 받아 총 7000만원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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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규 대한배드민협회 회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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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후원금 규정 무단 삭제

원래 협회가 후원사와 계약을 맺을 때 후원금 중 일부(20%)를 국가대표 선수단에 배분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김 회장 취임 후 사라진 부분도 이번 조사 결과에서 확인됐다. 문체부는 “선수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국제대회 우수 성적에 따른 보너스도 전에는 “후원사가 선수단에 직접 지급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협회를 통해 선수에게 지급한다”고 바뀌었다가 지난해 “후원사가 협회에 지급한다”로 변경됐다. 이 역시 김 회장 체제 아래서 일어난 일이다. 선수들은 문체부 조사 과정에서 “규정이 바뀐 뒤 보너스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문체부는 “해당 예산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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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지나친 선수 활동 제약

많은 선수들은 협회가 후원사 경기용품(라켓·신발)을 의무적으로 쓰도록 강제하는 규정에 대해서도 불합리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사회 심의 당시 신발은 제외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김 회장이 반대했다고 문체부는 전했다. 문체부는 “이런 식으로 특정 용품 사용을 강제하는 종목은 복싱이 유일하며, 미국·프랑스·일본·덴마크 등 대부분 다른 나라는 선수에게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했다.

선수들은 비(非)국가대표 선수 국제 대회 출전 제한 규정도 폐지하거나 완화하기를 희망했다. 협회는 국가대표 경력 5년 이상에 남자는 28세, 여자는 27세 이상이어야 세계배드민턴연맹 승인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체부는 “선수의 직업 행사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규정”이라며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학력에 따른 실업팀 신인 선수 연봉 상한(고졸 5000만원, 대졸 6000만원)과 지도자와 협회 지시에 복종하도록 의무화한 규정도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안세영이 지적했던 선배 선수의 빨래와 청소를 후배가 대신 해주는 등 선수단 내 부조리에 대해선 문체부 관계자는 “일부 고참 선수가 그런 강요를 했었다가 현재는 많이 사라져 선수단 내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보긴 힘들다”고 했다. 문체부는 국제대회 일정 등으로 아직 면담하지 못한 국가대표 선수들 의견을 추가로 듣고, 각종 의혹 관련 추가 자료를 제출 받는 등 조사를 마무리한 뒤 이달 말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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