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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단독] 안마원 운영 5년 만에 ‘부정수급’ 낙인…시각장애인 결국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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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고 장성일(44)씨가 숨지기 하루 전인 지난 3일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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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희망이 무너졌네. 현실하고 행정하고 하나도 안 맞고. 장애가 있어도 남들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 하니 너무 허무하네.”



시각장애인 장성일(44)씨가 지난 4일 자신이 운영하던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안마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생업에 활동지원사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5년 간 활동지원 급여가 환수될 수 있다’는 시청 쪽 경고를 들은 뒤였다.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에서 장씨는 ‘모범적인 아빠이고 싶었던’ 희망이 무너진 좌절감을 호소했다. 유족과 장애인 단체는 장씨 같은 ‘장애인 1인 사업주’를 위한 업무 지원 제도가 너무 늦게 도입된데다, 복잡한 제도 내용에 대한 안내마저 부실한 현실이 빚은 황망한 죽음이라고, 애도했다.



장씨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 의정부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유족들은 8일 장씨의 삶을 전하며 장애인 지원 행정의 헛점을 비판했다. 장씨는 서른이 넘어 1급 시각장애 판정을 받고 ‘안마사’가 되기 위해 6년 동안 의정부와 서울을 오가며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2019년 7월 안마원을 열어 고등학생 두 아들과 나이 든 부모님 생계를 책임졌다. 안마 봉사로 국회의원 표창을 받았다. 불우이웃을 돕겠다며 돼지저금통에 저금하는 게 낙인 사람이었다. 누나 장선애(50)씨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삶을 부정당한 느낌이었겠죠. 아이들한테 항상 아버지로서 모범이 되려 했는데 자신이 한순간에 부정수급자가 된다, 그걸 못 견뎠을 것 같아요.”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달이다. 의정부시가 장씨에게 ‘지난 5년 동안 정부가 지원한 활동지원사 급여 2억여원을 환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게 유족들 설명이다. 눈이 안 보여 계산 등 잡무를 활동지원사한테 도움 받았던 게 문제였다. 장애인활동지원에관한법률 16조는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수급자의 생업은 지원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활동지원사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막기 위한 것인데, 영세한 장애인 1인 사업주로선 대개 새로 직원을 고용해 장애로 인한 업무 불편을 해소할 여력이 없다. 곁에서 활동을 돕는 활동지원사에게 일 도움까지 받는 경우가 실제론 적잖은 이유다.



한겨레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장성일(44)씨 빈소 모습. 유족들은 “고인이 가장 행복해 했을 20대 시절의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골랐다”고 말했다.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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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법적 업무범위에 대해서도 장씨는 명료한 안내를 받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 최선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은 “활동지원서비스 제공 기관에서 관련 안내 사항을 장문의 문자메시지로 보낸다. 시각장애인은 그걸 소리로 듣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며 “(시청이) 이런 문제를 5년 동안 방치하다가 갑자기 복지제도 수혜자를 부정수급자 취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씨는 유서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갑자기 이렇게 뒷통수를 치네”라고 표현했다.



이런 사정 탓에 지난해에야 법 개정으로 활동지원사와 별개로 1인 장애인 사업주의 일을 지원하는 ‘업무지원인’ 제도가 만들어졌다. 다만 이제 갓 시범사업을 시작한 수준으로 예산 규모가 적은데다 장애인 활동·노동 지원 제도의 복잡한 전달체계 문제 또한 여전하다. 지난해 법 개정을 통해 업무지원인 제도 신설을 이끈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현재 활동지원사는 보건복지부, 근로지원인은 고용노동부, 업무지원인은 중소벤처기업부 등으로 담당 부서가 다른데, 이를 통합해 운영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복지 수요자가 자신의 필요에 맞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가 유서에 남긴 마지막 당부는, 평소 그의 성격처럼 끝내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다. “아빠 엄마한테도 죄송해요. 가게에 있는 황금돼지는 오픈 때부터 모은 것이에요. 불우이웃 돕기로 모은 것이니 소년·소녀 가장에 기부해주세요. 그럼 모두 안녕.”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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