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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태양광 송전 딜레마’ 넘으려면 [김백민의 해법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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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남 도내 태양광 발전 단지.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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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민 |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호남은 풍부한 일조량과 광활한 평야로 태양광 발전의 최적지로 주목받아왔다. 역대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이번 여름에 우리가 큰 전력 대란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전체 발전량의 17%를 차지한 태양광 발전 덕이다. 그러나, 한국전력공사가 당장 이달부터 송전선 용량 부족을 이유로 호남과 제주 지역에 추가 태양광 사업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해 논란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으나, 장기적 관점에서는 아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한전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급증한 태양광 발전량을 기존 송전망만으로 버티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송전망 증설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며, 주민 반대 등 현실적 제약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부족한 송전망을 이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최하위권인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막아서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태양광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2010년 와트당 2달러 수준이던 태양광 모듈 가격이 올해 0.2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 90%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 하락에 이젠 많은 국가가 태양광 발전을 미래의 대안 에너지가 아닌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주류 에너지로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송전망 부족을 이유로 2031년까지 태양광 발전 설비의 신규 설치를 제한하겠다는 것은 글로벌 추세와 동떨어진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송전선과 같은 에너지 인프라 구축이 미흡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재생에너지 설비만 늘리려고 한 데 있다. 재생에너지는 근본적으로 분산형 에너지원이다. 송전선을 통해 멀리 실어 나르기보다는 생산지 인근에서 바로 소비할 때 빛을 발하는 에너지인 것이다. 화력이나 원자력 발전에 적합한 대규모 중앙집중식 발전 패러다임으로 재생에너지를 다뤄오다 보니 결국 심각한 문제에 다다른 것이다.



따라서 재생에너지는 그 특성에 맞게 생산지 인근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모델 구축이 시급하다. 또 재생에너지의 약점인 간헐성을 보완하고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에너지 저장 기술 개발과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구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부와 한전이 국가 에너지 전환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제는 과감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수도권에 집중된 대규모 공장들이나 대규모 데이터센터의 지방 이전을 적극 유도해 지역의 남아도는 태양광 발전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에너지 효율 제고라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수도권 내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철도 연변 유휴지, 건물 옥상 등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만으로도 서울시 전력 소비량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술과 고급 태양전지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첨단 기술력을 갖춘 국가에서 송전선 용량 부족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재생에너지 확대에 제동을 거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기술은 있되 상상력이 결여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감한 도전 정신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다. 송전선 문제를 넘어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혁신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역 특성에 맞는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도시 인프라를 활용한 창의적인 발전 방식을 도입하는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미래 에너지 혁명의 주역이 아닌 방관자로 전락할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상상력과 혁신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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