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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나 태어난 집은 어디인가?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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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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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나를 둘러싼 파동들이 일제히 한곳을 가리켰다. 50여년을 잠자고 있던 어떤 끌림에 이끌려 내 탯줄이 묻힌 곳을 향하게 되는, 이 마법 같은 순간을 귀소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한 문예지가 기획한 ‘시인의 뿌리’ 덕분에 나 태어난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지난해 엄마마저 돌아가신데다 아버지 기일과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신혼의 엄마 아버지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냈을 옛집을 찾아가는 일은 내게 두분을 기리는 성묘길이자 귀향길이었다.



강산도 다섯번이나 변하고 거리나 동네 이름까지 달라진 마당에 나 태어난 집을 찾는 일은 설레기까지 했다. 문제는, 옛집 주소를 정확히 기억하는 가족이 없었다. 먼저 한 일은 기억 속 장소들을 검색해보는 일이었다. 초등학교와 영산강, 그 강을 건너다녔던 다리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그곳이 좌표였다. 다음으로는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서울로 전학 온 해가 분명치 않았고 옛 나를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물증이었으니. 거주 지역 주민센터에 신청했더니 한시간 후에 받아볼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나’와 ‘남이 기억하는 나’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대체로 우수수나 가가가를 받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기록은 기억과도 달랐다. 서울로 전학 왔던 4학년 2학기를 전후로, ‘체구가 작고’ ‘준법성, 성실성, 책임감, 인내심’이 있었다는 어린 나를 학년별로 복원하느라 며칠이 수다해졌다. 50년 전의 지능검사 점수라니!



익숙한 지명들을 거쳐 나 태어난 집 근처에 도착했다. 상전벽해라는 말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정문에서부터 우시장을 가로질러 다녔던 하굣길을 찾았으나, 우시장이 있었음 직한 곳에는 축협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도로들도 새로 생기거나 넓어져 있었으니 길을 잃은 건 당연지사. 분식점에 들어가 어릴 적 즐겨 먹었던 팥칼국수를 먹으며 탐문을 시작했다. 금은방집 여주인의 도움으로 아실 만한 어르신과 전화가 연결되었고,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들 이름과 기억 속 지명들을 죄다 소환한 후에야 간신히 길을 얻었다.



나 태어난 집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집 앞 복개된 도랑으로 알아봤다. 큰비가 와 도랑물이 넘치면 막내 오빠와 대바구니로 미꾸라지를 잡던 곳이다. 열린 대문 안에 들어섰더니 어르신 한분이 나오셨다. 내 아버지에게 집을 산 사람에게 다시 집을 샀는데, 15년 전쯤 본채와 별채를 가로질러 2차선 도로가 나면서 대문 쪽 텃밭 자리에 새로 집을 지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집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난 듯 반가웠다.



옛 뒤뜰이 어디쯤일까 두리번거리는 중, 도로 건너편 축벽 아래의 공터 끝에 감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아, 저 땡감나무, 그래 감나무 뒤, 담 같은 축벽 위로 윗집이 있었다. 대문 앞 도랑과 뒤뜰 끝 감나무를 좌표로 찍자, 도로 위로 나 태어난 집이 금세 복원되었다. 도로를 가로질러 키 큰 젊은 아버지가 긴 코트를 입고 대문에서 중문, 마루를 지나 안방으로 걸어오신다. 감나무 아래 뒤뜰 장독대와 우물과 부엌을 오가며 철철이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던 젊은 엄마는 부지런도 하다. 새집이 들어선 옛 텃밭에서는 나와 막내 오빠와 조무래기들이 온갖 놀이를 하고 있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흰 눈이 쌓이던 옛 화단이 있었음 직한 도로 위에서 발을 쿵쿵 굴러본다. 그래, 여기에, 오빠 언니들은 물론 내 탯줄도 묻혀 있을 것이다.



사거리 정미소 자리엔 방앗간이, 주전부리를 사 먹던 점방 자리엔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언니 오빠 꽁무니 붙어 ‘깍두기’처럼 따라 들어갔던 옛 극장 자리엔 빌딩이 올라가고 있었다. 배가 들어오고 큰 홍수엔 곧잘 범람했던 선창 포구는 유람용 황포 돛배가 떠 있었고 어물전들은 음식점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니, 나 태어난 집은 없다. 무너지고 사라진 그 부재의 자리에, 그 부재의 기억 속에서만 나 태어난 집은 존재한다. 이제 나 태어난 집은 떠나온 내 발걸음이 모여 사는 집일 것이다. 내가 바로 그 부재를 기억하는 기록의 집일 것이다. 언젠가 잊혀도 좋은, 사라져도 좋을.



수구초심(首丘初心), 호사수구(狐死首丘)라는 말이 있다. 죽을 때 제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두는 것이 비단 여우나 호랑이뿐이겠는가. 연어나 송어도, 바다거북이나 비둘기는 제 난 곳으로 찾아든다. 명절 때면 고향을 찾거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건, 제 뿌리를 기억하라고 탯줄이 시키는 일일 게다. 추석(秋夕)이 가까워지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애써 추석(追惜·죽은 이를 애도함)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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