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31 (화)

[박순규의 창]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한국 축구, 이게 정상인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홍명보의 한국대표팀, 5일 팔레스타인과 0-0으로 비기면서 논란 증폭
지지 받지 못한 선수들, '심란'...정상적 홈경기 '시급'


더팩트

한국의 '캡틴' 손흥민이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팔레스타인과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B조 1차전을 0-0으로 비긴 후 아쉬워하고 있다./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창 밖으로 보이는 한국 축구의 하늘이 흐리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팔레스타인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B조 1차전 홈경기에서 골결정력 부족을 노출하며 0-0으로 비겨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10년 만에 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은 홍명보 감독은 한국보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에서 73계단이나 아래인 96위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동안의 논란을 잠재우려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를 펼치면서 오히려 더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대표팀 서포터스 붉은 악마를 포함한 6만여 관중들은 홍명보 감독이 전광판 스크린에 비칠 때마다 야유를 보냈고 주전 수비수 김민재는 경기 후 붉은 악마 응원단 석으로 걸어가 좀 자제해달라는 말과 제스처를 했다.

경기 후 주장 손흥민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그라운드 상태나 상대를 도와주는 듯한 응원 분위기가 홈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다면서 '원팀'이 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쟁'에 비유되는 국가대항전 A매치 경기에서 이 같은 행태는 이적행위나 다름 없다. 협회 행정에 대한 불만과 입장을 바꾼 대표팀 감독에 대한 비난을 경기장의 선수들 앞에서 표출하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 더 도그' 현상으로 보인다.

더팩트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경기에 앞서 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펼쳐든 붉은악마 응원단./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6만여 관중의 야유, 주장 손흥민의 아쉬움, 그리고 붉은 악마와 대립각을 세운 김민재의 제스처는 지금 한국축구가 심각한 병을 앓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번 경기에서 나타난 일련의 비정상적 일들은 단순히 한 경기의 결과를 넘어 한국축구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협회 행정에 대한 불만과 감독에 대한 비난이 선수들에게까지 투영되어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명백한 비정상이다.

축구는 흔히 전쟁에 비유된다. 단순한 운동 경기가 아닌, 승리를 향한 치열한 경쟁과 전략, 팀워크 등 전쟁과 유사한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축구와 전쟁 모두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축구는 승리, 전쟁은 승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상대 팀 또는 적군을 꺾고 승리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승리를 위해 선수들은 체력적인 한계를 넘어서고, 전쟁에서는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선수들은 심리적인 압박도 견뎌내야 한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타이틀이 걸린 경기는 특히 선수들에게 큰 심리적인 부담을 준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선수들을 크게 압박하기도 한다. 국가 대표팀 경기는 국가의 명예를 걸고 치르는 만큼, 마치 국가 간의 전쟁과 같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축구가 전쟁에 비유되는 것은 단순히 승리에 대한 극한의 추구뿐만 아니라, 경기 전략, 팀워크, 감정, 그리고 사회적 의미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더팩트

환영받지 못한 홈 팀 감독. 10년 만에 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은 홍명보 감독은 팔레스타인과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논란에 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손흥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팬들의 성원을 받지 못한 착잡한 심정을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10년 대표팀에 발탁된 후 128번째 A매치에 나서면서 역대 한국 남자 선수 최다 출전 단독 4위로 올라선 날이었지만 개인적인 영광은 제쳐두고 답답한 속내를 내비쳤다.

경기 중 홍명보 감독에 대한 팬들의 야유에 대해 손흥민은 "내가 대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알 것이고, 팬들 기대치가 있고, 생각하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하는 게 선수들의 몫이다. 결정이 난 일이고, 가야 할 길이 먼 상황 속에서 진심 어린 응원과...염치없지만, 응원과 성원이 선수들이 한 발 더 뛸 수 있는 원동력이다. 다시 한 번 염치없지만 주장으로서, 받아들여 주고,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한다"고 말했다.

안방에서 팬들의 절대적 성원을 받지 못한 선수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이날의 허탈한 경기 결과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상태도 한 몫했다. 손흥민은 "기술 좋은 선수들이 많은데 볼 컨트롤이나 드리블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빠른 템포의 경기를 못 한 것이 팬들에게도 아쉬우셨을 것이다. 홈에서 할 때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 원정 경기 그라운드 컨디션이 더 좋다는 게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더팩트

상암벌은 안방인가 적지인가.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전에서 팔레스타인 팬이 자국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결코 변명이 아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지난친 행사와 경기 일정으로 잔디가 망가져 경기가 있을 때마다 선수들의 불만을 샀다. 잔디가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콘서트와 A매치, K리그 경기 등 다양한 행사와 경기가 열려 균질의 잔디 관리를 구조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잔디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경기 중 선수들이 잔디 위에서 자주 미끄러지면서 경기력 저하와 부상 위험이 증가한다. 잔디 높이가 일정하지 않아 볼 컨트롤이 어렵고 패스 미스가 잦고 경기 중 잔디가 심하게 훼손되어 경기장 전체의 균일성이 떨어진다.

축구를 하기 위해 지어진 경기장이 수입을 위해 콘서트와 행사를 자주 개최하면서 잔디를 망가뜨리고 있으니 이 또한 역설이다. 이날 이강인과 손흥민의 결정적 찬스에서의 득점 실패 또한 잔디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유럽의 빅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한국의 주축 선수들은 오히려 경기장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의 팔레스타인 선수들은 되레 역습 속공에서 더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다. 유럽파가 주축을 이룬 한국 선수들보다 팔레스타인 선수들에게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환경이 더 익숙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러가지로 한국이 팔레스타인에 승리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웩 더 도그(Wag the Dog) 현상이란 본말이 전도된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작은 부분이나 하위 개념이 전체나 주요 개념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정치에서는 정치인의 작은 실수나 발언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 사용될 수 있고, 경제에서는 특정 기업의 부실이 전체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경우, 선물 시장이 현물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한 팀이 되어 '적군'인 상대를 압박하고 주눅들게 하면서 승리를 끌어내야 할 안방 경기에서 상대적으로 위축된 것은 우리 선수들이었으니 본말이 전도된 '왝 더 도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은 모두 6개국이 홈 앤드 어웨이로 10경기를 치러 1,2위가 본선 직행 티켓을 얻는다. 이제 한국은 9경기가 남아 있으며 그 가운데 4번의 잔여 홈 경기가 있다. 남은 홈 경기에서는 안방의 한국 선수들에게 유리한 잔디 상태와, 팬과 선수 모두가 하나 되어 상대의 기를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정상적 홈 경기가 됐으면 한다. '상암벌'은 안방인가, 적지인가를 되묻지 않았으면 한다.

더팩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skp2002@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