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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참을 수 없는 가려움’ 아토피 피부염…마음도 상처받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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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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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가명)씨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입니다. 학교를 휴학하고 현재는 집 안에서만 생활하며 쉬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민한 성격으로 친구들이 적은 편이었습니다. 누가 부르면 깜짝깜짝 잘 놀라고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았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습니다. 친구들끼리 웃거나 떠들면 그게 자기 이야기인 것 같고, 특히 자신의 팔과 목에 있는 아토피 피부염(아토피성 피부염) 상처를 보고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예정씨의 팔과 목의 접히는 부분에는 매일 밤 가려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있었습니다. 예정씨는 상처를 가리느라 여름에도 긴팔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예정씨의 가려움증은 오랜 역사가 있었습니다. 아기 때부터 그는 태열이 심한 편이었고, 양쪽 볼의 피부가 빨갛게 되고 진물이 나면서 팔다리에도 발진이 생겼습니다. 아기 때도 가려워서 칭얼대고 밤새 잠을 못 자고 긁었다고 합니다. 유아 시절을 벗어나면서 다행히 태열은 없어지고 가려움증은 줄어들었습니다. 초·중학교 때는 열은 없었지만 잔기침이 계속되었고, 숨을 쉴 때 가슴에서 “쌕쌕”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친구들과 놀려고 하면 숨이 쉽게 차고 답답해서 함께 어울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뒤 예정씨는 병원을 방문해 소아 천식으로 진단받고 치료받으면서 증상이 다행히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피부 주름 깊게 파인 흉터





고등학교에 가면서 다행히 천식 증상은 줄어들었지만 피부에 가려움증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팔이 굽혀지는 부분과 무릎 뒤의 굽혀지는 부위에 습진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피부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어릴 적에 있었던 아토피 피부염이 재발한 것이었습니다. 예정씨는 피부과 치료를 받으며 낮에는 가려움증을 잘 못 느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밤새 가려움증이 심해지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친구들과는 거의 이야기도 하지 않고 혼자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이야기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가려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예정씨는 대학교에 합격하고 난 뒤 아토피 피부염도 좋아지고 많이 밝아졌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룹으로 해야 하는 과제에 참여하면 무척 힘들었습니다. 다시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지고 밤새 긁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친구들이 자신의 팔과 목의 아토피 상처를 보며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것 같아 힘들었습니다. 자신이 거울로 보기에도 ‘태선화’한 상처가 흉해 보였습니다. 태선화란 계속 긁어서 피부가 두꺼워지고 피부 주름이 깊게 파여 두드러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정씨는 결국 대학을 휴학하고 집에서 지내게 되었고 잠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뒤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온종일 누워 자신의 처지와 미래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앞으로 취직은 어떻게 하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암담한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머물며 아토피 피부염도 좋아지지 않는 예정씨가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예정씨는 어머니의 권유로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검사 결과 그는 집중력 저하를 동반한 우울증으로 진단되었습니다. 아토피 피부염을 가진 경우에는 면역계가 과다하게 반응해 가려움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몸속의 면역계가 위험하지 않은 항원에 대해 과다하게 활성화되어 면역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면역 물질의 증가가 우울증의 발생에도 관여하게 됩니다. 동시에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정씨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자신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예정씨의 경우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에서 보이는 충동적인 성격보다는 짜증이 많고 불안이 많은 성향을 보였습니다.



예정씨의 아토피 피부염은 외부 환경이나 학교에서 먹는 음식과도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아토피 피부염과 우울증이 동시에 더 심해졌습니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친구들의 시선에 더욱 민감해졌습니다. 이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잠을 이루지 못하니 아토피 피부염은 더 심해지고 괴로움이 가중되는 악순환을 겪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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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귀기 성공에 자신감까지





예정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상담하면서 학교에 복학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알레르기 내과-피부과-정신건강의학과 협진을 통해서 함께 치료를 진행하였습니다. 알레르기 내과에서는 학교에 가면 아토피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먹는 음식 중에 아토피를 악화시키는 것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예정씨가 입는 옷이 아토피의 원인이 되는지도 확인하였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상담 후 친구들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예정씨는 상담을 통해 친구들이 웃거나 떠드는 소리가 자신을 향한다는 생각이 ‘관계사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계사고란 나와 관계없이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과 관계 지어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관계사고가 심해지면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기 힘들어집니다. 친구들이 실제 말로 이야기하는 것 이외에 표정이나 말투 등으로 친구들의 생각을 짐작하는 것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피부과에서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치료를 하면서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그 뒤 예정씨는 대학교에 복학했고 초·중·고를 거치며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친구 사귀기’를 시도해 성공하는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수업을 듣는 같은 과 친구에게 처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함께 점심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친구는 자신도 가려움증으로 고생한다면서 자신이 피부에 바르는 크림을 건네주었습니다. 예정씨는 친구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이야기하고 함께 어울리는 것이 참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편해지자 아토피 피부염도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누가 예정씨의 피부를 보고 뭐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정씨를 항상 괴롭혔던 아토피 피부염과 태선 증상은 예정씨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좋아졌고 예정씨 또한 삶에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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