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6 (월)

이슈 미술의 세계

아들이 본 로스코 “아버지의 직사각형은 관객을 불안하게 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

크리스토퍼 로스코 지음| 이연식 옮김|은행나무|512쪽|3만4000원

조선일보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

마크 로스코 지음| 김주영 옮김|위즈덤하우스|328쪽|2만6000원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4~7일)과 ‘키아프 서울’(4~8일)이 개막했다. 국내 주요 미술관과 메이저 갤러리들이 공들인 전시를 선보인다. 이에 발맞춰 출판 시장에도 미술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주목할 만한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 관련 서적 두 권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The Artist’s Reality)’과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Mark Rothko: From the Inside Out)’. 로스코의 예술관은 물론 그의 작품 세계를 개괄해 살펴볼 수 있다. 두 권의 책을 섭렵하고 내달 26일까지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 전시 중인 로스코 작품을 감상하면 감동이 남다를 것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열 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로스코는 뉴욕을 기반으로 독보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색면(色面) 추상화로 유명한 그는 거대한 캔버스에 스며든 오묘한 색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거장이다.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은 로스코 본인이 직접 쓴 일종의 예술 비평서다. 1930년대 말~1940년대 초, 로스코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 로스코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목숨을 끊은 이후 ‘로스코가 쓴 원고가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노트가 발견된 건 한참 뒤인 1988년. ‘소문 속의 그 책을 발견한 것 같아요.’ 기록 관리를 도와주던 직원이 창고에서 오래되고 엷은 황갈색 뭉치를 찾아낸다. 아들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이를 대중에게 공개할지 말지 고민한다.

자신의 작품에 관한 언급은 없다. 대신 주제·조형성·아름다움·공간·신화·자연주의 등 그가 생전에 관심을 가졌던 주제에 관해 썼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정서적 고양을 의미’하고 ‘그림 속 모든 조형성의 총합은 아름다움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힘’이다.

조선일보

서울 용산구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 걸린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관람객이 보고 있다. 페이스갤러리는 내달 26일까지 로스코의 작품 여섯 점과 이우환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2인전 '조응'을 열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들은 서문에 이렇게 쓴다. ‘타이핑 상태는 엉망이었고, 손으로 덧쓰거나 지운 자국이 많았다. 오타도 많았고, 서술의 방향성과 순서도 명확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정말 성가신 일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수십년이 지나며 크리스토퍼는 생각을 바꾼다. ‘한 예술가의 개인적인 상념이라기보다는 대중을 위해 말하는 책’이자 ‘예술에 관한 아버지의 철학이 시작되는 책’이기에 이를 세상에 내보이기로 한다. 아버지의 원고를 엮어 2006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했다.

아들 크리스토퍼는 엮은이에서 필자로 한 발 더 내딛는다.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는 그가 2015년에 쓴 아버지 로스코에 관한 해설서다. 아버지의 유산을 관리하며 전시를 기획했고, 로스코의 예술 세계와 작품을 감상하는 법 등을 강연한 내공이 바탕이 됐다. 크리스토퍼는 이번 페이스갤러리 전시를 위해 누나 케이트를 비롯한 가족들과 며칠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왜 로스코는 직사각형 형태를 고집했을까? 크리스토퍼는 쓴다. 아버지에게 직사각형은 ‘형태가 아닌 형태(un-shape)’였다고. ‘가장 자연스럽고 절대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구획 짓기 때문에 이를 선택한 것이다.’ 로스코의 직사각형은 그 무엇도 모방하거나 재현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로스코의 작품과 속세의 이미지를 연관 짓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크리스토퍼는 대학 시절 사귄 여자 친구가 자신에게 아버지의 작품을 가리켜 ‘크고 부드러운 냉장고’라고 말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저자는 추상적인 작품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사람들이 성급한 연상을 한다고 본다.

그는 ‘로스코의 추상화는 그 이미지가 낯설기 때문에 근원적인 층위에서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며 ‘관객이 작품과 교감하려면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로스코 작품 세계의 정수로 꼽히는 미 텍사스 휴스턴의 ‘로스코 예배당’을 찾았던 그는 ‘기대했던 심오한 명상적 경험을 하는 대신, 도망치고 싶다는 강한 충동과 싸워야 했다’고 털어놓는다.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 로스코를 잘 몰랐거나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독자도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진입 장벽이 낮은 친절한 책이다.

[황지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