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임시대의원총회에서 김교웅 대의원회 의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의대 정원 증원 저지-필수의료 패키지 대응-간호법 저지를 위한 구호 제창을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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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모은 성금이 28억3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수억원이 의협 임원과 ‘블랙리스트’ 피의자 등의 변호사 선임비로 사용된 반면, 집단 사직 이후 생계가 어려운 전공의들을 지원하는 데는 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협은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및 필수 의료 패키지 정책에 반발하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이후 성금 계좌를 만들고 회원들을 대상으로 성금을 걷었다. 당시 각 시·도 의사회는 ‘의협 발전 기금’ ‘의대 증원 저지 및 필수 의료 패키지 폐기 성금’ 등 이름으로 수천만원씩 내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성금이 총 28억3000만원이다.
의협 비대위는 5월 초 임현택 회장 집행부 출범을 앞두고, 4월 말 해산했다. 해산 전 비대위는 성금 28억3000만원 중 18억원을 시·도의사회 지원금으로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남은 10억3000만원은 의협의 ‘법률 지원금’으로 남겼다. 이 중 현재까지 3억원 정도를 의협 임원, 사직 전공의 등의 변호사 선임비로 사용했다.
성금으로 변호사 선임비를 지원받은 사람 중에는 의료 현장에 파견된 공보의 명단, 학교 수업을 듣는 의대생 등 ‘블랙리스트’를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도 있다. 의협 비대위는 블랙리스트 피의자 7명에게 2000여만원의 변호사 선임비를 지원한 바 있다.
반면, 지금까지 사직 후 생계가 어려운 전공의들은 이 성금으로 지원금을 한 푼도 못 받았다. 남은 7억7000만원 성금도 ‘법률지원금’으로 용도가 정해져 있어 생계비로 지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료 의료인을 상대로 블랙리스트를 유포한 피의자들에겐 지원하고, 생계가 어려운 사직 전공의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현 집행부 산하에서 모은 성금으로는 전공의 지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의협 집행부는 남은 성금 용도를 ‘전공의 지원금’으로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측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전협 측은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 및 공시 송달 인원 13인의 피의자 조사 등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법률 비용이 최대 7억7000만원으로 예상된다”며 “대규모 수사 소송이 발생하는 경우 법적 대처가 중요하다. 귀중한 성금은 전공의, 의대생의 법률 지원에 사용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했다.
한 의협 관계자는 “당시 성금 모금은 대정부 투쟁을 위해 모은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사직 전공의들을 돕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이 돈이 전공의들의 어려운 생계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되고 있다”며 “시·도의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전공의 지원하는 데 성금을 썼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썼는지 의협에 내용 공유가 전혀 안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정해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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