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6 (월)

[사설] 기시다 총리 퇴임 직전 ‘빈손 방문’, 국민 동의 없는 외교 지속가능하지 않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확대 정상회담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자리로 가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만간 퇴임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6일 서울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12번째 정상회담을 마쳤다. 윤 대통령이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감수해가며 여러 양보 조처를 쏟아냈지만, 빈 물컵의 ‘나머지 반’을 채우는 알맹이 있는 호응 조처는 끝내 없었다. 자민당의 ‘온건파’를 대표하는 기시다 총리의 취임 직후엔 그가 ‘전향적인 역사 인식’을 밝히면서 한-일 관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허무한 결론에 이르게 됐으니, 정부는 장기적으로 일본과 어떤 관계를 구축해 나갈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두 정상은 이날 오후 만나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 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어, 재외국민 보호협력 각서를 체결해 제3국에서 양국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었고, 양국 국민이 더 편리하게 상대국을 오갈 수 있도록 출입국 간소화 같은 인적 교류 증진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로 했다. 의미 있는 성과지만 한국의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후 부부 동반 만찬을 했다.



양국 간 특별한 현안이 없는데 퇴임을 앞둔 일본 총리가 한국을 찾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부에서 한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기시다 총리의 퇴임 파티를 해주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을 큰 위기에 빠뜨린 당내 ‘정치자금’ 문제를 깔끔히 해결하지 못해 오는 27일 치러지는 총재 선거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이런 곤궁한 정치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한-일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하는 성과를 거뒀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가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지난 역사에 대해 사죄·반성한 무라야마 담화(1995)와 한-일 파트너십 선언(1998)의 정신을 견지했기 때문이었다. 기시다 총리의 허무한 퇴임에서 보듯 일본에 더 이상 반성적 역사 인식을 기대하기 힘든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일본과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역사는 덮어주고 군사협력만 하면 된다’는 자세로 양국 관계를 개선해왔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는 이런 접근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부는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두 나라의 전략관을 일치시키는 새 한-일 공동선언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는 무리한 ‘속도전’을 포기하고, 지속가능한 양국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 국민 동의를 얻지 못하는 외교란 사상누각일 뿐이다.



▶‘딥페이크’와 ‘N번방’ 진화하는 사이버 지옥 [더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