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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유효상 칼럼] 왜 국민연금은 합병에 반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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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안건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주 임시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지만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의 매수청구 규모에 따라 최종 결정이 나겠지만, 합병이 성사된다면 새롭게 탄생하는 SK이노베이션은 자산 105조 원, 매출 88조 원의 초대형 에너지 기업이 된다.

9월 2일 현재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주식매수예상가인 11만 1943원을 밑돌고 있다. 만약 합병전까지 주식매수청구가와 격차가 커져서, 합병에 반대하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일반주주들이 전부 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그 금액은 9229억 원으로 SK이노베이션이 제시한 8000억 원을 넘어가게 된다. SK는 '8000억 원을 초과할 경우 계약을 해제하거나 합병 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고 공시한 바 있다. 그러나 SK는 이 금액을 초과해도 합병을 진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SK는 국민연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합병을 강행하려는 걸까? SK가 내세운 합병 목적은 현재 에너지(석유, LNG 등)와 미래 에너지(재생에너지, 수소, SMR 등)는 물론, 배터리, ESS(Energy Storage System) 등을 아우르는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진화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합병 효과에 대한 수식어들은 화려하지만, 명분은 형식적이고 실제로는 'SK온 구하기'라는 평가다.

SK그룹의 차세대 먹거리로 낙점된 SK온은 자동차 배터리 제조사로, SK이노베이션에서 2021년 10월 물적분할되어 출범했다. 그러나 전기차 시장의 업황 둔화로 실적 및 재무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 2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투자에도 불구하고, 설립 후 11분기 연속 적자 행진이 이어지며 금년 상반기까지 무려 3조 원이 넘는 누적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자력으로는 설비투자를 감당하지 못해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의 심각한 골치거리다.

그래서 SK온을 살리기 위해,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비상장 회사지만 수익성이 좋은 SK E&S를 합병하는 것으로 자본시장은 평가하고 있다. 이노베이션의 메인 비즈니스인 정유, 화학 사업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자회사인 SK온에 수조원을 투자를 했지만 더 이상 대규모 자금 지원이 불가능해지자, SK E&S를 구원투수로 투입한다는 것이다. 배터리 시장의 수요 정체로 외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자 고육책이다.

그러나 합병비율이 E&S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결정되면서, 이노베이션 일반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딜이 성사되면, E&S 대주주인 SK㈜는 이노베이션 지분율이 36.2%에서 55.9%로 대폭 커진다. 회사의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일반주주들의 희생만 강요한 느낌이다. 7%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도 상대적으로 손실을 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미래 성장사업인 배터리 부문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모기업의 재정건전성을 확보한다고 했지만 결론은 지배주주의 몫을 키운 것이다.

처음 양사 합병 계획이 흘러나왔을 때부터 SK이노베이션을 시가로 평가하면 주주에게 불리할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합병 이사회 공시 당일 SK이노베이션 종가는 10만 8100원으로,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10년 내 최저가에 가깝다. 그래서 시장에선 주가가 정상 구간을 벗어났다는 의견이 많았다. 2023년 18만 원대였던 주가가 합병 발표 당시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은 1 대 1.19로 결정되었는데, 상장법인인 SK이노베이션은 시가로, 비상장인 SK E&S는 본질가치를 적용하여, 각각 10조 8000억 원, 6조 2000억 원으로 평가됐다. 그런데 양사의 기업가치를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SK이노베이션이 SK E&S보다 무려 6배 이상 크다. 합병비율은 1 대 0.16이 된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주권상장법인과 주식비상장법인 간 합병의 경우 주권상장법인은 시가로 합병 가액을 산정하고 비상장기업은 본질가치로 평가하도록 하고 있으나, 시가가 자산 가치에 미달하는 경우 자산가치로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은 E&S가 유리한 평가 방법을 적용했기 때문에 합병비율에 대한 논란이 커진 것이다.

결국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이 적절하지 않으며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의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합병안에 반대했다. 합병 비율 산정이 설사 자본시장법상 문제가 없어도 SK이노베이션 주가가 자산가치 대비 절반 수준으로 저평가돼 있어 회사 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책위는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전담하는 조직이다. 기업 가치 훼손, 주주 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주주 제안을 한다.

2015년에도 국민연금은 SK C&C와 SK 간 합병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바 있다. 그때도 반대 이유는 주주가치 훼손 우려다. 양사의 합병비율이 지배주주에게 유리하게 결정됐다는 지적이다.

한편, SK와 비슷한 논란을 겪고 있는 두산그룹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두산 측은 "사업구조 개편 방향이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주주 분들 및 시장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추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시장과의 소통 및 제도 개선 내용에 따라 사업구조 개편을 다시 검토하는 것을 포함해 양사 간 시너지를 위한 방안을 계속 찾고자 한다"며 합병 철회의 이유를 밝혔다.

SK가 이번 합병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관건이지만, 워낙 SK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11월 1일 새로운 SK이노베이션은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합병 이후다. 이노베이션의 정유 사업은 국제유가 및 정제마진 하락으로 성장성은 둔화되고 있고, E&S의 주력사업인 도시가스 사업은 현금 창출 측면에서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향후 성장은 제한적이다. 결국 합병법인의 미래는 SK온의 실질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올해 들어 전기차 캐즘 현상이 두드러진 데다 하반기엔 배터리 화재로 전기차를 둘러싸고 '포비아(공포증)'까지 확산되고 있는 탓에 시장 환경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카의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고, SK온의 주요 고객사인 포드, 벤츠가 전기차 판매 비중이 크게 줄어들자 배터리 주문을 축소하고 비용 감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합병 후에도 SK온이 흑자로 전환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E&S를 흡수한 '뉴 이노베이션'도 다시 합병 전과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배터리 시장이 나아지겠지 하는 천수답(天水畓) 식 대응이 아닌, 상황을 반전시킬 획기적인 후속대책이 필요하다.

합병만 되면, 엄청난 시너지가 일어날 거란 호언장담이 허언이 아니길 기대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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