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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186명 줄이려고 220만 시민을 위험에 빠뜨리나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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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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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우 | 서울 지하철 2호선 기관사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위험하다. 현재 열차를 운행하는 승무원 2명을 1명으로 줄이는 일이 내년 1월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1983년 개통 이후 지금까지 2호선은 앞쪽 운전실은 ‘안전 운행’을 책임지는 기관사가, 뒤쪽 운전실은 승객 승하차와 서비스를 담당하는 차장이 탑승하는 2인 승무로 운행하고 있다. 역사 구조나 시설도 2인 승무를 전제로 건설했다. 많은 인원을 수송할 수 있도록 200m짜리 대형(10량) 전동차가 투입된다.



2호선의 하루 수송 인원은 220만여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 이용 승객이 많은 지하철역 순위도 잠실역, 강남역, 홍대입구역 순으로 전부 2호선이다. 특히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한 바퀴 도는 핵심 노선으로, 전체 43개 역 중 21곳이 환승역이다. 이런 2호선이 40년 넘게 안전하게 운행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관사와 차장이 안전을 두 번 확인하는 검증된 ‘2인 승무 시스템’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올 초 1인 승무 계획을 꺼내 들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지하철 구조조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 중 하나다. 공사가 서울시에 보고한 자료를 보면, 1인 승무로 186명을 감축할 수 있으며, 추진 근거로 신형 전동차 도입, 스크린도어 전면 설치 등을 제시하고 있다. 경영 효율화만 있고, 시민 안전을 걱정하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소식을 접한 2호선 운행 담당 직원의 90% 이상이 1인 승무 반대 안전서약서’를 작성했다. 그 이유는 첫째, 시민 안전을 파괴하는 시대착오적 정책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2호선처럼 이용 승객이 많고 대형 전동차를 운행하는 도시에서 1인 승무를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의 주요 원인은 1인 승무였다. 2인 승무였다면 초기 화재 진압과 승객 대피를 신속하게 할 수 있었다. 2014년 5월 온 국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2호선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도 기관사와 차장의 빠른 대처로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1인 승무가 도입되면 이런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지하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수습도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지하철 운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운행 중 작은 고장이라도 조치하느라 지연되는 시간은 치명적이다. 출퇴근 시간대 강남역으로 향하는 전동차의 경우 1분만 지연되더라도 승강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지연 운행이 수시로 일어나면 지하철의 장점인 ‘정시성'은 사라지고, '지옥철'의 오명이 되살아날 것이다.



차장이 사라지면 응급환자와 취객 난동, 사람 찾기, 성추행, 교통약자 보호, 냉난방 조절 등 각종 사고와 민원 처리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을 다투는 응급환자가 발생하거나 위험한 승객의 난동이 있을 경우 차장의 조기 출동과 대처로 이를 모면하고 있다. 공사가 주장하는 신기술 도입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시민 안전을 강화하는 당연한 조치일 뿐, 1인 승무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다.



둘째,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 현재 1인 승무를 하는 5~8호선의 경우 2003∼2016년 사이에 공황장애로 기관사 9명이 자살했다. 지하 공간에서 1천명이 넘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기관사 모두에게 공황장애는 잠재적 질병이다. 1인 승무가 도입되면 차장이 하던 업무까지 기관사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40년 동안 축적된 기관사와 차장의 안전운행 시스템도 붕괴할 것이다. 노동자가 건강해야 시민 안전이 보장된다. 오세훈 시장은 186명을 감축해서 220만여명의 안전을 위협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2호선 1인 승무 추진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오늘도 안전하게 일터와 집을 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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