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국가폭력 피해자들 쉽게 배상받아야"
프랑스도 행정책임 범위 확대하는 추세로
판단 근거 '객관적 정당성' 모호 지적도
편집자주
좌익척결, 민간인 학살, 간첩조작, 고문치사… 독재정부와 군사정권이 지배하는 동안 이 나라에선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했습니다. 정부가 앞장서 기본권을 침해하고 인권을 고의로 외면한 권력 남용 사건이 많았습니다. 민주화 정부 이후 뒤늦게 국가가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려는 노력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과오 자인’이 곧바로 사법부의 ‘국가배상 인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국가 폭력에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은 왜 국가와의 법정싸움에서 판판이 패소하고 있는 것인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의 구조적 한계와 정부의 고의적 면피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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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험난한 싸움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사회에선 '국가폭력 피해자의 경우 개별적 진정 없이도 포괄적으로 구제'하는 쪽으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가 소송을 걸었을 때 국가배상법에 따라 '공무원 개인'의 과실을 입증해야만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현재 구조 역시 해결할 과제다.
배상 절차 별도로? 유엔 "폭넓은 배상 해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지난달 고문방지협약 이행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제출한 제6차 국가 보고서 관련 최종 견해에서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폭넓은 구제 및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고문방지위원회는 유엔 고문방지협약 이행을 위해 설립된 기구다. 피해자들이 개별적∙공식적 진정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손해배상을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라는 주문으로, 법 개정 필요성도 언급했다.
피해 사실이 규명된 이들이 법적 배상 절차를 별도로 밟아야 하는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실제 1976년 '거문도 간첩단' 누명을 쓴 일가족은 2022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도 형사보상청구와 국가배상 소송을 추가로 진행해야 했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여러 소송을 이끄는 단체가 없으면, 같은 사건의 피해자들조차 따로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에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실 인정 범위, 폭넓게 확대해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022년 8월 30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금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와 그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긴급조치 9호 발령이 고도의 정치행위이기 때문에 배상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7년 만에 변경한 것이었다. 최주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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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소송에 돌입해도 문제는 또 있다. 국가배상법 제2조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손해배상 책임이 있을 때에는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공무원 개인의 고의·과실과 위법성이 중요 요건인 셈인데, 문제는 시간이 이미 오래 지나 증인이 없고 자료가 부족한 과거사 사건에서까지 개인이 '이미 사망한 특정 공무원의 잘못'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2022년 8월 긴급조치 9호 피해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종전 판례를 변경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전향적인 움직임으로 꼽힌다. 대법원은 당시 "대통령과 수사기관, 법관 개인의 불법행위 책임을 하나씩 따질 필요 없이 긴급조치 발령과 이에 따른 수사, 재판 일련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아 국가 배상 책임이 있다"고판단했다. 하지만 다른 사건들에 폭넓게 적용되진 못했다.
프랑스의 경우, 한국과 달리 국가배상 책임 성립요건으로 가해 공무원의 주관적인 고의 또는 과실을 요구하지 않는다. 과실책임주의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피해자 구제를 위해 무과실 책임으로 위험책임 등 행정책임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김철우 세명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법에서 공무원의 '고의'를 입증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위법행위를 자기 책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위법한 행정작용이 있다면 과실이 존재한다고 보는 프랑스의 사례가 국가책임 사각지대를 보완해 준다"고 설명했다.
'객관적 정당성 결여 안 돼 배상책임 없다?'
이 밖에 법원이 위법성과 공무원 과실을 따지는 과정에서 배상 책임의 성립을 부정하는 근거로 자주 제시하는 '객관적 정당성'의 기준이 모호하단 지적도 있다. 최근 판례에선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할 정도가 아님을 판단하는 근거로 공무원 개인이 해당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거나 인식하더라도 회피할 수 없었다는 점을 위주로 검토하고 있는 추세다. 다만, 이 역시 주관적 판단에 기댄단 점에서 한계가 있다.
지난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국가배상제도의 운영현황과 법무정책적 과제'에서도 '객관적 정당성'에 대해 "민사법상 불법행위 책임에서보다 국가배상 책임을 좁게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국가배상 책임의 인정에 대한 대법원의 소극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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