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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르포]'석유 부자' 아부다비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 들어 마스다르 시티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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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시 꿈꾸는 아부다비를 가다]
UAE의 '수도'...사막 피해 페르시아만 해안가에
석유 시대 거치며 경제, 문화 기능 집중된 도시
석유와의 작별 준비하며 '마스다르 시티' 구축
탄소 제로, 자율주행 교통 시스템, AI 연구까지
첨단 미래 산업 압축적으로 모아둔 '계획 도시'
해외 기업 사업 기회 열려 있어..."언제나 환영"
한국일보

마스다르 시티 센트럴파크 전경. 마스다르 시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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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 사막의 모래는 무척 고왔다. 모래 위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작은 입자의 모래들이 물처럼 신발 속으로 타고 들어올 정도였다. 신발은 점점 무거워졌고 모래 속으로 발이 빠져 몇 걸음 옮기는 것조차 상당한 균형 감각을 요구했다. 아스팔트 평지에서 걸을 때보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몇 배는 힘이 들어갔다. 멀리서 보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던 다음 모래산은 아무리 걸어도 쉽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사막은 인간이 마음처럼 걷기도 힘든 곳이었다.

국토 80%가 사막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시(Abu Dhabi City)가 페르시아만 해안가에 자리 잡은 건 자연스런 결과였다. 비록 소금기가 있더라도 물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석유의 시대'를 거치며 부를 쌓았고 전체 국토의 5%뿐인 아부다비시에는 각종 기능이 집중됐다. 대형 간척지 프로젝트가 이어졌고 그 위에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아부다비시는 '현대 도시'의 상징이 됐다.

이런 아부다비시가 새로운 챕터를 열어젖히고 있다. 석유에 기대 덩치를 키우던 시절을 거쳐 지속가능한 도시를 세우고 있다. 화석연료 도움 없이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생산·사용하고 인공지능(AI)·무인 자율주행 시스템 등 앞으로 아부다비를 이끌 핵심 산업이 한데 모여 있는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 이곳에서 아부다비시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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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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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사막 기후에 '탄소제로' 달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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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르 시티에서 공기를 순환시켜주는 '윈드 타워'. 이 타워를 통해 공기가 위아래로 순환하면서 더운 공기가 식는 효과가 발생한다. 아부다비=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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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르 시티는 아부다비시 중심지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약 17km를 이동하면 등장하는 사막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인간이 지내기 척박한 사막 환경에서 멈추지 않겠다는 꿈을 꾼다는 게 역설로 느껴질 때쯤 마스다르 시티 안에 들어섰다. 모양새가 저마다 다른 건물들 사이 길목에서 마스다르 시티 관계자가 말을 걸었다. "마스다르 시티 밖과 비교해 조금 시원한 거 같지 않나요? 이곳이 약 2도 정도 온도가 낮습니다."

실제로 건물 사이에 서 있으면 꽤 세찬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줬다. 살라 지앗 마스다르 시티 지속가능성 부문 부매니저는 "도시를 지상에서 약 7m 높이에 마련했다"며 "건물과 구조물을 디자인할 때 공기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순환할 수 있게 신경 썼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도시 입구와 출구는 크게 만들고 길은 좁게 만들어 뜨거운 공기가 식을 수 있도록 했다"며 "심지어 마스다르 시티 내에 있는 건물들은 태양의 방향까지 고려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시원하게만 하려는 건 아니다. 마스다르 시티의 목표는 '탄소 제로(0)'다. 한국에서는 10월 말, 11월 초면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지만 아부다비는 30도 중반이 넘어서는 날씨에 어디든 에어컨이 가동 중이었다. 그만큼 전기가 필요한 곳이 많고 이 전기를 만들기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해 탄소를 배출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2도'라도 낮추는 도시 설계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애쓰는 노력의 하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스다르 시티는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었다. 이 발전소는 10메가와트(MW)급으로 21만㎡ 넓이에 8만7,000여 개에 달하는 모듈이 설치돼 있다. 여기에 마스다르 시티 내 건물 옥상에도 태양광 패널이 깔려 있어 총 13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갖추고 있다. 현재 마스다르 시티에서 쓰는 전기를 모두 대응하고도 남는 용량이다. 마스다르 시티 관계자는 "태양광으로 만든 전력이 남아 송전망을 통해 아부다비 관계 당국으로 보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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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르 시티 전경. 마스다르 시티의 건물 디자인과 배치는 공기 순환을 고려해 설계됐다. 아부다비=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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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두 배 면적을 누비는 '자율주행 시스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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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르 시티 내 운행 중인 '무인 소형 전기트램'이 정류장에 서 있는 모습. 아부다비=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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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르 시티는 여의도 면적(290만㎡)의 약 두 배인 570만㎡로 조성 중이다. 이 넓은 공간에서 마스다르 시티가 목표로 삼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이동 수단이 완전 자율주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현재는 마스다르 시티 입구에서 여러 행정 기관이 몰려 있는 구역으로 이동할 때 이용할 수 있는 무인 소형 전기트램 여섯 대가 운행되고 있었다.

성인 네 명이 탈 수 있는 이 트램은 아스팔트 바닥에 깔린 자석 레일을 따라 움직였다. 꽤 빠른 속도인데도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마스다르 시티 관계자는 "매우 예민하게 작동할 수 있는 센서가 담겨 있어 새가 주변을 지나가도 멈출 정도"라고 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버스는 바닥에 설치된 충전기 위로 주차했다. 그리 긴 거리를 오가는 건 아니었지만 약 40만 회 운행하면서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마스다르 시티는 앞으로 도시 전체를 누빌 수 있는 대형 자율주행 버스를 운행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아부다비 지방자치교통부가 이끄는 아부다비시 지능형 교통망을 만드는 프로젝트에도 협력하고 있다. 오마르 알 샤이바 아부다비 지방자치교통부 정보기술국장은 "마스다르 시티의 여러 연구기관과 함께 AI로 자율주행하는 택시, 버스로 아부다비시 내 교통망을 짜고 있다"며 "택시만 40대가 돌아다니고 현재 이 교통망으로 약 6,000km를 소화할 수 있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부다비 미래 첨단산업의 집약체

한국일보

마스다르 시티 내에 위치한 무함마드 빈 자이드 AI 대학원. 아부다비=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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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르 시티가 이렇게 지속가능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려고 애쓰는 배경에는 아부다비 첨단 산업의 집약체가 되고자 하는 야심이 깔려 있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AI 대학원(MBZUAI)이 마스다르 시티에 입주한 게 이를 잘 보여준다. MBZUAI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의 이름을 따 2019년 세워졌다. 81명의 교수진의 절반이 세계 100대 AI 연구기관 출신으로 설립 5년 만에 자연어 처리, 머신러닝 분야에서는 '글로벌 Top 10'에 들어가는 대학원이 됐다.

에릭 싱 MBZUAI 학장은 "MBZUAI는 인재 양성뿐만 아니라 의료·교육·기후 등 UAE 정부의 여러 프로젝트에서 AI 기반 설루션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배출한 졸업생 212명 중 74%가 UAE의 AI 기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 기관 말고도 지멘스 에너지, 국제 재생 에너지 기구(IRENA) 등 1,100개 넘는 글로벌 기업 및 기관들이 마스다르 시티에 들어왔다. UAE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와 한국전력의 합작법인 본부도 이곳에 있다. 특히 해외 기업, 스타트업들이 아부다비에 쉽게 진출해 터를 잡을 수 있게 돕는 '프리존(Free Zone)'도 있다.

아미에 알와드히 마스다르시티 프리존 책임자는 "입주 기업들끼리 AI, 바이오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서로 힘을 보태며 밸류 체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아부다비에서 첨단 산업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찾아주길 바란다"며 "마스다르 시티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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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르 시티 내에 있는 '프리존' 전경. 이곳에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진출해 아부다비에서 각종 첨단 산업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다. 아부다비=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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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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