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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군무원, 中에 1억대 받고 7년간 기밀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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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요원에 포섭돼 軍 비밀 문건 등 최소 30건 빼돌려

차명계좌 이용해 1억6000만원 받아

조선일보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블랙요원’ 신상 정보 등 군 기밀을 넘긴 혐의로 구속 기소된 국군 정보사령부 군무원 A씨(49)가 “2017년 중국 정보요원에게 포섭돼 기밀을 유출해왔다”고 진술했다. 그는 문서를 영외로 들고 나가거나 무음 카메라 앱으로 촬영해 기밀을 빼돌리고, 중국 클라우드 서비스에 파일을 올리는 방식으로 이를 전달했다. 가장 철저해야 할 정보사의 보안에 구멍이 뚫렸는데, 군은 수년간 이를 파악하지 못하다 올해 6월에야 조사에 나섰다.

군 검찰은 28일 기자들과 만나 “피고인은 2017년 포섭돼 당시부터 군 기밀을 유출하고 중국 출장 시 현금을 건네받았다고 진술했다”며 “수사를 통해 A씨가 2022년 6월부터 30건의 군사 기밀을 유출했고, 2019년 5월부터 차명 계좌를 통해 약 1억6000만원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2017년부터 2022년 초까지의 기밀 유출 내용 및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받은 현금 규모는 파악이 안 돼 기소 내용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했다. 군 검찰은 지난 27일 A씨를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A씨는 1990년대 정보사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하다가 2000년대 군무원으로 채용돼 중국 등지에서 공작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팀장급이었던 그는 2017년 4월 중국 현지 공작망 접촉을 위해 중국 옌지 지역 공항에 내려 화장실에 가는 길에 중국 측에 억류됐다. A씨는 검찰단에 “한국에 있는 가족 신상에 대한 위협을 받아 협조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A씨는 귀국 후 중국 측이 자신에게 접촉했다는 사실을 신고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A씨는 2017년 11월쯤부터 군사 기밀을 유출하며 중국에 방문했을 때 현찰을 전달받았다고 진술했다.

A씨는 ‘위협을 받았다’고 했지만, 이후 중국 측 연락책에게 “돈을 더 주면 자료를 더 보내겠다”고 말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고 한다. 사실상 돈이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군 검찰은 “A씨가 중국 측에 약 40회에 걸쳐 총 4억원을 요구한 정황과, 실제로 2019년 5월부터 A씨의 지인 명의 차명 계좌에 1억6205만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A씨가 연락책에게 전달한 기밀 중 군 검찰이 확인한 것은 2022년 6월부터 파일로 된 문서 형태 12건, 구두 전달 18건 등 총 30건이다. 그는 자신이 취급·생산한 비밀은 자유롭게 부대 밖으로 가지고 가 촬영하거나 책상에서 내용을 메모했다. 정보사 타 부서 기밀 문건은 대출을 신청한 뒤 사무실로 가져와 갤럭시 휴대전화에 설치한 무음 카메라 앱으로 촬영하고 반납했다고 한다. 군부대 내에서는 카메라 촬영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보안 앱’을 사용하는데, A씨는 이를 사용하지 않았거나 우회했다. 보안 앱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빼돌린 기밀 문서는 중국 클라우드 서비스에 파일을 올리는 방식으로 전달했다. A씨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군 기밀을 압축 파일 여러 개로 쪼개 올리면서 각각의 파일에 암호를 걸었고, 암호 전달은 게임 앱 내 음성 메시지 기능을 활용했다. 이런 수법은 포렌식 과정에서 음성 메시지 수천 건이 복원되면서 확인됐다.

A씨가 유출한 기밀에는 정보사 일부 블랙요원 신상 정보, 정보사령부 전반적 임무와 조직 편성, 우리 정보부대 작전 방법 및 계획, 특정 지역에 대한 정세 분석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군 검찰 관계자는 “누설된 비문 중 일부 블랙요원 명단이 있는데 이 흑색요원들은 북한에서 활동하는 요원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 사건은 북한 내 인적 정보(휴민트) 요원과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진술에 따르면 A씨는 7년에 걸쳐 정보를 유출해왔지만 정보사·방첩사는 이를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6월 유관 기관의 제보로 조사에 나선 것이다. 군 검찰 관계자는 “비밀 접근 기회가 너무 쉽게 허용됐고, 비밀 영외 반출 통제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 검찰은 A씨를 기소하면서 북한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게 적용하는 군형법상 간첩죄는 뺐다. 검찰단 관계자는 “A씨에게 접촉한 중국 요원이 북한 정보기관과 연계됐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있었다”면서도 “군 검찰 조사 결과,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었고 추가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고 했다. 20일의 구속 기간이 만료돼 군형법상 일반이적만 적용했지만 추가 분석 자료 등을 통해 북한과의 연계성이 입증될 경우 간첩죄 적용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A씨를 최초에 억류하고 이후 연락책을 맡았던 중국 정보요원은 조선족 말씨를 쓰는 중국 국적 남성이었는데, 해당 인물의 구체적 신원과 소속은 확인되지 않았다.

군 검찰은 A씨가 1억6000만원을 어디에 사용했냐는 질문에 “추적은 됐는데 사생활 부분이고 가족도 있으니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군 검찰은 A씨가 기밀 유출과 별개로 정보 관련 예산 약 1600만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포착해 별건 수사 중이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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