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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라마단 만찬 열고 기독교 방송 나온 駐韓이스라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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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통념 깨는 행보로 주목… 임기 마치고 귀국하는 토르 대사

이슬람교의 금식월 라마단 기간이던 2021년 5월 6일 저녁 서울 한남동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저에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권 10여 국 대사와 외교관 등 20여 명이 찾아왔다. 아키바 토르(63)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주최한 이프타르 만찬 초대 손님이었다. 라마단 기간 해 진 뒤 첫 식사를 뜻하는 ‘이프타르’는 금식에 동참한 사람들이 친교와 우의를 나누며 이슬람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지는 시간이다. 이 행사를 이슬람권과 껄끄러운 관계인 이스라엘 대사가 주최한 것도, 그 초청에 이슬람권 외교관들이 대거 응한 것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기독교 방송인 극동방송에도 고정 출연했다. 언제나 키파(유대인 전통 모자)를 쓰고 다닐 정도로 독실한 유대교 신자이면서도 유대인에 대한 통념을 깨는 행보로 4년 임기를 보내고 귀국하는 그를 26일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만났다.

조선일보

본지와 인터뷰하는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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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이스라엘 외교관이 왜 이슬람식 만찬을 주최했나.

“이슬람은 우리의 이웃이고 이스라엘 인구의 5분의 1도 무슬림이니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건 당연하다. 할랄(이슬람식 식단)과 코셔(유대교식 식단)는 이름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이가 엄격한 계율을 지키면서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식전에 무슬림 외교관들은 안에서, 유대인들은 밖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 중동 정세가 경색되면서 연례행사로 자리 잡지는 못해 아쉬웠다. 기회가 되면 대사관저에 무슬림 외교관들을 다시 초청해 이프타르 만찬을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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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자전거 종주중인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극동방송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기독교계 원로인 김장환 목사님(극동방송 이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종교의 뿌리가 같고, 경전도 공유하고 있으니 성경의 배경 지식을 알려주는 시간을 마련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문화유산을 더 많은 한국인과 공유하고 싶었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가교 역할을 하는 건 대사로서 내 직무이기도 하다. 청취율은 괜찮게 나오는지 방송국에 물어봤는데, ‘시원찮았으면 진작에 퇴출됐을 것’이라더라, 하하.”

매주 한 차례 10분씩 편성된 ‘이스라엘 대사와 함께하는 성경 공부’는 2년 반 동안 방송됐다. 토르 대사는 출연료 없이 재능 기부 형태로 마이크를 잡았다. 방송 내용을 묶어 최근 출간한 책 ‘이스라엘 대사가 들려주는 창세기, 위대한 시작의 이야기’ 인세는 모두 극동방송에 기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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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한-이스라엘 FTA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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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마지막 여름은 어떻게 보냈나.

“광복절 연휴를 맞아 3박 4일 일정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달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 닦아놓은 자전거길이 정말 좋더라. 곳곳이 연결되고 터널까지 잘 뚫려 있었다. 덕분에 15년 된 구닥다리 자전거로 편하게 달리며 한국의 곳곳을 눈에 담았다. 페이터르 반 데르 플리트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동행했는데, 숙소에서 한국인들의 변화하는 생활 양식을 지켜볼 수 있었던 점도 뜻깊었다. 숙소로 잡은 충주의 한 리조트는 반려동물 동반자들에게 특화된 곳이었는데, 프런트에서 ‘수영장을 이용하려면 개와 함께 써야 하는데 괜찮으시겠느냐’고 묻더라.”

-많은 주한 외국인들이 등산을 즐기는데, 산에 오르지는 않았나.

“얼마 전 박진 전 외교장관 주도로 몇몇 대사들과 함께 북한산으로 고별산행을 다녀왔다. 중성문에서 함께 사진 찍고 노적사에 들러 주지스님께도 인사드리고 차도 마셨다. 박 전 장관과는 각별하다. 우리 둘은 미국 하버드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 전 장관은 또 국회의원 시절부터 양국 의회 친선 외교에도 앞장섰다. 나보다 네 살 위라서 ‘형님(older brother)’이라고 부른다. 한국 도착하고 나서 대통령 선거로 정권이 바뀌며 그가 외교부 장관에 취임하고, 지난 총선에서 서대문구에 출마했다 낙선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선거 결과 나오고 걱정돼 전화하니 ‘동생(younger brother), 나 괜찮아’라며 도리어 나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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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5월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저에 차려졌던 이프타르 만찬상./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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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던가.

“한국뿐 아니라 일본·중국·대만 등 동아시아에선 유대인을 특별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여러분들 생각처럼)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 하하. 다만 노벨상 수상자 중 유대계가 4분의 1에 이르고, 인구가 1000만명도 되지 않는 이스라엘 기업의 미국 나스닥 상장사 수가 미국·캐나다·중국에 이어 4위인 것을 보면 우리에게 독특한 재능이 있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부터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슬람 무장 단체)와 전쟁 중이다. 전쟁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발발했지만, 가자지구 내 민간인 피해 급증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 여론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없었나.

“하마스와의 교전에서 탱크 부대를 지휘하던 이웃집 사위가 목숨을 잃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열흘 전이었다. 군인인 한 친구의 아들은 인질 구출 작전 중 심하게 다쳐 수술을 열일곱 번 받고 이제 겨우 걷게 됐다. 이스라엘은 나라인 동시에 사회이고 가족이다. 우리 ‘가족’의 피해 사례는 곳곳에 있다. (국제사회 여론 등) 지금의 상황이 도전적이고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면서 빠른 종전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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