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불황형 대표 상품 복권
1등이 꾼 꿈 살펴보니
누구나 일확천금을 꿈꾼다. 지갑 사정 팍팍할수록 갈망은 심해진다. 복권 판매액이 그 증거. 올해 상반기만 약 3조6168억원. 4년 새 40% 가까이 뛰었다. ‘로또’ 비중이 가장 크지만 당첨금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 7월 제1128회 차 로또 1등은 무려 63명으로, 당첨금을 나누니 역대 최소인 4억1992만5560원이었다. 벼락 맞을 확률을 뚫고도 세금 떼면 실수령액 3억원대. 즉석 복권으로 눈길이 쏠린다. 발권 오류 및 은폐 의혹으로 신뢰도가 추락하긴 했지만 장당 500원짜리 ‘스피또500′은 1등 당첨금 2억원, ‘스피또 1000′ 5억원, ‘스피또2000′ 10억원(최고 20억원)이니까. 복권 판매사 동행복권은 매회 즉석 복권 1등 당첨자 인터뷰를 홈페이지에 싣는다. 빠지지 않는 질문,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그래픽=송윤혜 |
그리하여 지난 4년 치 ‘스피또’ 1등 당첨자 100명의 길몽을 분석해 봤다. 미신으로 치부해도 여전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꿈과 행운의 연결 고리. 가장 빈번한 꿈은 ‘똥’(18명)이었다. 그것도 무더기 똥. “솥뚜껑을 열었는데 가마솥 안에 황금 똥이 가득 차 있었다”거나 “일요일에는 변기에 똥이 넘치는 꿈을 꿨고 월요일에는 내 몸에 묻어서 안 떨어지는 꿈을 꿨다”는 고백. 똥은 과거 농경 사회에서 비옥한 토양을 위한 귀한 비료였기에 풍요와 생산의 상징성을 지닌다는 것이 해몽 업계의 정설. 고로 반드시 사람 똥일 필요도 없다. 2021년 8월 경기 김포에 사는 B씨는 “반려견이 항상 가는 장소에서 똥을 싸고는 미끄러지길래 잡아주다 나도 넘어져 똥 구덩이에 빠져버렸다”고 털어놨다. 당첨금이 2억원이었으니 개꿈은 아니었다.
좋은 일이 있으려면 귀인이 나타나야 하는 법. 조상이나 돌아가신 부모(17명)가 자주 강림했다. 시어머니에 증조 외할아버지까지. “조상님들이 앞에 앉아 계셨고 옆에 호랑이가 있어 화들짝 놀라니 조상님 한 분이 ‘물지 않으니 안심해라’ 하셨고 호랑이가 내 손을 핥았다”(지난 8월 5억원 당첨자)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꿈도 있었다. 2022년 1월 5억원 당첨자는 “꿈에서 어머니를 만났다”며 “오랫동안 편찮으시다가 올해 돌아가셨는데 병 간호 열심히 했다고 보답해 주신 것 같다”고 했다. 효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예지몽일지 모를 ‘복권 당첨되는 꿈’(9명)이나 돼지·잉어·닭 등 예부터 사랑받은 동물 꿈(9명)도 다수였다. “가수 임영웅과 이야기 나누는 꿈을 꿨다” 같은 유명인 꿈(7명)도 적지 않았다. “꿈에서 어머니와 삼성 이재용 회장이 친분이 있어 보였고 함께 식사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과거 전자 복권 1등에도 당첨됐는데 또 1등이라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2022년 10월 5억원 당첨자) 비록 꿈일지언정 평소 선망하던 부귀한 유명인과 만난 일을 ‘좋은 소식’의 신호로 해석한 결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커피 마시는 꿈을 꿨다” 같은 대통령 꿈(5명)도 여럿이었다.
개중에는 “예전 살던 집 감나무 밑에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헬멧을 쓰고 숨어있다가 쫓아와서 도망가는 꿈을 꿨다”(2020년 11월 5억원 당첨자)는 식의 기묘한 꿈부터, 수도가 터져 물벼락을 맞거나,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거나, 차량 전복 사고를 당하는 얼핏 악몽처럼 보이는 기억도 있었다. “군대 다시 가는 꿈”(2명) 같은 끔찍한 대답도 있었으나 각자 20억원, 5억원을 타 갔다. 역시 꿈보다 해몽일까?
그러나 더 의미심장한 바는 1등 당첨자 120여 명이 “꿈을 꾸지 않았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숙면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꿈은 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일하고 있는 건설 현장에서 비둘기를 봤습니다. 포클레인 안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날아가지 않아서 자세히 보니 눈을 다쳤기에 물티슈로 닦아줬습니다. 멀리 날아가는 비둘기를 보며 박씨나 하나 물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됐습니다.”(2020년 11월 5억원 당첨자) 길흉화복은 결국 자기 행실에 달린 것일지도.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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