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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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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트럼프-푸틴 배후… 극우 세력의 근간을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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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책사로 알려진 배넌… 푸티니즘 기반 제공한 두긴

두 인물의 정신적 세계 탐구… 전통주의 신봉-세계화 반대

세계 뒤흔든 극우 포퓰리즘… 사상적 지도 촘촘히 그려내

◇영원의 전쟁/벤저민 R. 타이텔바움 지음·김정은 옮김/372쪽·1만9800원·글항아리

동아일보

2018년 6월 미국 인류학자인 저자가 뉴욕의 최고급 호텔에 들어선다. 미리 전달 받은 암호명을 말하자 호텔 직원이 펜트하우스로 그를 은밀히 안내한다. 창밖의 맨해튼 고급 주택가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이는 스티브 배넌. 우파 온라인 매체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설립자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책사였다. 2017년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그는 반이민주의 등 트럼프 정부의 주요 정책 메시지를 만들었다. 저자는 배넌에게 녹음기를 켜며 묻는다. “당신은 전통주의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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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서 통한 미-러 정치 책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위쪽 사진). 좌파 노동계급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동양의 전통 종교와 철학, 영성 등에 심취하며 전통주의자로 거듭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상적 책사로 알려진 정치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아래쪽 사진)은 반페미니즘, 반민주주의 가치를 지지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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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은 블라디미르 푸틴과 트럼프라는 두 거물의 오늘을 있게 한 2명의 책사를 파헤친 르포르타주다. 배넌과 푸틴의 책사로 알려진 정치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극우주의자’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인이나 정치학자가 아니다. 스웨덴인 어머니와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 콜로라도대 민족음악학 교수다. 어쩌다 민속음악을 전공한 인류학자가 극우 포퓰리즘 정치인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됐을까. 그는 스웨덴 민속음악을 연구하던 중 극우 정당인 스웨덴 민주당의 자금과 인력이 민속음악계에 유입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연구 주제를 확장했다. 인류학 연구로 얻게 된 인맥을 활용해 오래 공들여 두 인물과의 인터뷰에 성공한 것.

1980년 1월 상고머리를 한 26세의 배넌은 색다른 관심사를 가진 해군 엘리트였다. 동료들이 밤 문화를 즐기러 다닐 때 그는 서점을 찾아가 불교, 힌두교 등 동양 종교에 심취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인간을 상품으로 대하는 신자유주의는 천박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결국 서구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세계화를 반대하는 극우의 기반이 된다.

두긴은 공식적인 푸틴의 조언자였던 적은 없다. 그러나 러시아를 지배해 온 ‘푸티니즘’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2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때 ‘유진스키 서클’에서 활동했다. 파시즘과 나치즘, 내셔널리즘, 신비주의 등을 연구하는 독특한 모임이었다. 그는 서구 근대 문명이 확립되기 전 유교, 이슬람, 힌두교 등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자유주의와 페미니즘, 성소수자 보호 등의 가치가 서양 지배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대척점에 있는 미국과 러시아이지만 주요 정치 세력의 사상적 근간이 하나로 통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를 추적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잘 만들어진 누아르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2018년 11월 배넌과 두긴의 ‘로마 비밀 회동’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논란으로 시끄러울 무렵 두 책사가 실질적 교감을 가진 것이다. 당시 배넌은 두긴에게 “전통주의자로서 미국과 함께 반대 세력에 맞서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합리성과 거리를 둔 극우 정치사상가들의 의기투합이 이뤄진 것.

오늘날 급부상하는 전통주의, 우파 포퓰리즘의 사상 지도를 촘촘히 그려낸 책이다. 트럼프의 재선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그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인물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막전막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이들 전통주의자들은 실천적 혁신을 전혀 이뤄내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들이 전통주의적 가치를 권력을 쥐기 위한 포퓰리즘 수단으로만 이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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