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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교토국제고, 연장 극적 첫 우승…고시엔에 “동해바다” 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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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3일 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결승전에서 교토국제고가 간토다이이치고와 2-1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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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교토국제고등학교 야구부가 106년 역사의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 야구대회에서 연장 접전 끝에 기적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고시엔야구장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에서 재일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가 2대 1로 간토다이이치고를 꺾고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봄과 여름 고시엔 야구대회 106년 역사를 통틀어 한국계 학교가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일본학교가 아닌 국제학교(현재는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인가)로 세워진 학교로서도 사상 처음 고시엔 우승팀이 됐다.





일본 국민 축제의 하나로 꼽힐 만큼 인기가 많은 고시엔 결승전 다운 명승부가 펼쳐졌다. 교토국제고 선발 나카자키 루이와 간토다이이치고 선발 하타나카 데쓰시의 불꽃 튀는 투수전이 벌어졌다. 특히 교토국제고 선발 나카자키 루이는 4회 1사까지 단 한명의 주자도 내주지 않으며 상대 강타선을 잠재웠다. 시속 130㎞대 후반 직구와 120㎞대 슬라이더 등 변화구가 절묘하게 홈플레이트를 파고 들었다. 이후 9회까지 34타자를 상대로 104개 공을 던지면서 4피안타(1사사구), 5탈삼진의 놀라운 투구를 선보였다. 9회말 2사 만루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우익수 뜬공으로 치명적인 위기를 넘겼다. 상대도 두 명의 투수를 바꿔가며 9회초까지 무실점으로 버텼다.



승부는 정규 이닝을 끝낸 뒤, 10회 승부치기에서 갈렸다. 무사 1, 2루에 주자를 놓고 공격을 시작한 10회초 고마키 노리쓰구 교토국제고 감독의 대타 카드가 적중했다. 교토국제고는 대타로 나선 니시무라 잇키가 안타로 만든 무사 만루 기회에 1번 가네모토 유우고가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 결국 선취점을 뽑아냈다. 이어진 만루 기회에서 교토국제고는 2번 미타니 세이야의 짧은 우익수 뜬공 때 3루 주자가 뛰어들어 점수차를 2점으로 벌렸다. 교토국제고는 이어진 10회말에 2사 만루 위기에 몰렸지만 더이상 득점을 허용하지 않으며 우승을 확정했다.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정상에 오른 것은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교토국제고는 1999년 창단해 25년 밖에 되지 않은 ‘신흥 야구부’ 수준이다. 게다가 창단 초기에는 재미삼아 야구를 하던 ‘장난꾸러기들의 모임’같은 수준의 팀이었다.



일본 전국의 내로라하는 고교야구부 3700여곳이 이 대회 출전을 노리지만, 고시엔행 티켓은 49장 뿐이다. 47개 도도부현(한국의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치러지는 예선에서 우승한 팀(도쿄도와 홋카이도는 2곳)에만 고시엔 진출 자격이 주어지는 만큼, 본선 진출팀은 막강 전력을 갖춘 팀들이다. 게다가 예선부터 고시엔도 한 경기라도 지면 바로 탈락하는 ‘녹다운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단 한 경기도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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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고시엔야구장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에서 재일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교 재학생과 동문 등이 교토국제고 야구부에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다. 니시노미야/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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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교토국제고는 2020년대에만 세 번의 고시엔 진출과 4강 진출 한 차례에 이어 우승까지 차지하며 신흥 야구 명문고로 확실히 자리잡게 됐다.



이번 대회 교토국제고에서는 ‘두 명의 에이스’로 불리는 나카자키와 니시무라 잇키가 팀의 승리를 책임지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특히 2학년생인 니시무라는 앞서 2차전과 4차전에서 모두 257개(2차전 139구·4차전) 공을 던지며 두 경기 모두 무실점 승리를 가져온 데 이어, 준결승에서도 5회부터 5이닝을 실점없이 완벽히 틀어막고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이번 대회 23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미스터 제로(0)’라는 별명을 얻었다. 졸업반인 나카자키도 1차전(9이닝 3실점·139구), 3차전(9이닝 무실점·143구), 5차전(4이닝 2실점·55구)에서 혼신의 역투를 보여줬다.



관중석에서는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일 국적 재학생과 학부모, 동문 등이 어우러져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특히 교토국제고 쪽은 “드디어 고시엔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며 이날 오전 7시께부터 전세버스를 동원해 재학생과 학부모, 동문, 학교 관계자, 교토 내 다른 학교에서 온 우정 응원단들을 실어날랐다. 본부석에서 “온열질환이 우려되는 날씨인 만큼 물을 많이 마시고, 건강에 유의해달라”고 할 만큼 무더운 날씨였다.



이날 3루쪽 관중석을 차지한 교토국제고 응원단은 무려 2800여명에 달했다. 재학생 응원단이 100여명으로 야구부를 제외한 대부분 학생들이 참석했고, 졸업생 500여명과 학부모 등이 대거 경기 관람에 나섰다. 고시엔 구장 3루쪽 관중석은 과거 흰옷을 입은 관중들이 이곳을 가득 채웠을 때, 마치 눈이 내린 거대한 산처럼 보인다고 해서 ‘알프스석’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응원단은 교토국제고가 공격할 때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홈런, 홈런”을 외치거나, 교토국제고 관악대의 연주에 맞춰 박수를 치며 축제처럼 경기를 즐겼다.



이날 경기 뒤에는 승리팀인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고시엔 구장에 다시 울려퍼졌다. 고시엔에서는 매 경기 뒤, 승리팀 선수들이 홈플레이트 앞에 모여 교가를 부르는 것이 관례다. 고시엔 경기를 중계하는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이 장면까지 전국 생중계를 하기 때문에 교토국제고의 승리 때마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가사가 포함된 한국어 교가가 일본 전역에 생방송되는 게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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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제고 야구 선수들이 지난 21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준결승전에서 승리를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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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학교 쪽에서는 이 문제가 과도하게 부각되면서 관련 기사에 학교와 학생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달리는 등 문제를 우려해 “교가 내용 중 동해바다라는 단어에 집착을 해서 기사 쓰는 문제를 삼가달라”는 요청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이번 대결은 일본 옛 수도인 교토와 현 수도인 도쿄 지역의 고교가 고시엔 봄·여름대회를 통틀어 사상 처음 맞대결한 결승전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일본 언론들은 “(교토와 도쿄라는) 전·현 일본 수도의 대결”, “자존심이 걸린 싸움”, “너무 재미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번 대회 직전까지 도쿄 지역에서 가장 최근 고시엔 여름대회 결승에 진출한 것은 2011년, 교토 대표팀은 2005년 이후 처음이었다. 이날 교토국제고의 우승으로 교토지역에선 1956년 이후 첫 우승팀을 배출하게 됐다.



니시노미야/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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