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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내수 살릴 책임, 금리에 떠넘긴 대통령실...‘짠물예산’ 짜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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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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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데 민간 경제분석기관은 물론 정부와 한국은행까지 공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정부가 내수 부진 극복의 책임을 한은에 돌리는 듯한 입장을 공개 표명한 데 있다. 한은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핵심 존재 이유로 두는 기관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침해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통화정책에 대해 개입성 발언을 한 건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2025년 예산안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22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나온 직후 “금리 (동결) 결정은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는 공개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추석 민생대책 발표 등 내수 진작을 위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데 금리가 인하됐더라면 더 조화스러웠을 것”이라며 불만을 내비쳤다. 통상 정부는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해 공개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 자칫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대통령실의 행보가 그만큼 이례적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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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노골적으로 한은에 불만을 드러낸 것은 심화하고 있는 ‘내수 부진’의 책임을 통화정책 쪽으로 돌리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한은은 이날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석달 전 전망치(2.5%)보다 0.1%포인트 낮춘 2.4%로 수정 발표했다. 내수 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한은은 석달 전과 견줘, 민간소비(1.8%→1.4%)와 설비투자(3.5%→0.2%) 전망을 크게 내려 잡았다. 건설투자(-2.0%→-0.8%)만 위축 강도가 다소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을 뿐이다. 한은은 “건설경기 부진 등으로 내수 회복 모멘텀이 약한데다 폭염 등 일시적 요인도 작용하며 취업자 수 증가가 5월 이후 예상보다 둔화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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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단은 이달 초 수정 경제전망을 내놓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시각과 엇비슷하다. 이 연구원도 올해 성장률 전망을 0.1%포인트(2.6%→2.5%) 내려 잡은 이유로 내수 부진을 콕 집은 바 있다. 민간 경제분석기관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박상현 아이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겨레에 “수출이 좋아진 업종도 반도체·자동차 중심으로 제한적이고, 나머지 업종은 회복되지 않아 투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취약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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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가계빚 불안 등을 염두에 두면 통화정책으로 내수 부양에 대응하는 건 위험이 뒤따른다. 내수를 부양하려다 금융 안정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반면 재정정책은 경제주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주는 통화정책과 달리 특정 취약 부분을 겨냥해 마중물을 부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전문가들이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2025년 예산안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날 대통령실의 이례적 입장 표명은 내년 예산안이 시장 기대보다 더 긴축적으로 편성됐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경상성장률 전망(4.5%·정부 예측)을 크게 밑도는 예산 증가율을 토대로 정부가 예산안을 짠 게 아니냐는 것이다. 긴축 예산은 물가 안정과 재정 건전성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내수 부진이 문제인 상황에선 즉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들을 겨냥한 맞춤형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통화정책은 그보다 넓고 큰 수단”이라며 “정부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건전 재정 원칙만 강조하다 보니 ‘모든 문제의 원인은 금리’라는 식으로 한은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영무 엘지(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도 “정부가 재정 여력이 없거나, (지출을 크게 늘릴) 상황이 안 되니 통화정책으로 (여론의) 눈을 돌리려는 듯하다”고 말했다.



박수지 suji@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김회승 선임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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