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3 (금)

한·중, 헤어지는 중입니다 [특파원 칼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최현준 | 베이징 특파원



지난 6월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중국 대학입시 ‘가오카오’에 응시한 학생은 1342만명이다. 이들은 점수에 맞춰 서열화된 2900여개 대학에 차례대로 입학한다. 중국의 대학 서열화가 한국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고, 그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중국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베이징대학이 있다.



지난달 2024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진행한 베이징대에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한국어학과(조선어학과)와 러시아어학과 등 2개 과에 지원자가 미달한 것이다. 두 과는 매년 각각 10명 안팎의 본과 신입생을 뽑는데, 1300만명이 넘는 수험생 중 두 과에 지원한 학생이 1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얘기다.



러시아는 전쟁 중이라 그렇다 치고, 한국어학과는 왜 이렇게 인기가 없었을까. 중국 지인 여럿에게 물은 결과 취업 때문일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한국어를 전공해서는 먹고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으리라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중국에서 한국의 위상은 빠르게 낮아졌다. 자동차, 가전, 화장품, 의류 등 분야에서 한국산이 환영받는 것은 옛말이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사태와 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며 양국은 급속히 멀어졌다. 2022년 집권한 윤석열 정부의 대미국 편향 외교와 중국에 대한 강경 발언은 양국 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하였다. 요즘 한국 교민이 모여 사는 베이징 왕징에서 한국인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현상은 거울을 보듯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한때 영어 학원을 위협했던 대형 중국어 학원이 2010년대 말부터 대거 문을 닫았고, 대학들도 중문과나 중국어학과를 없애거나 다른 과와 통폐합하는 분위기이다. 한국 학생과 학부모들도 중국어를 배워서는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아는 것이다.



한-중 교류가 줄고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어와 중국어에 대한 전공 수요가 감소하는 것인데, 베이징대 한국어학과의 신입생 모집 미달은 좀 다른 충격으로 다가온다. 중국 최상위 엘리트층의 한국에 대한 무관심이 이런 상황으로 나타난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다행인 것은 중국에서 전공으로서의 한국어 인기가 바닥인 것과 달리, 취미로서 한국어 학습은 꽤 인기가 높다는 것이다. 1990년대 시작돼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드라마, 노래, 영화 등 ‘한류’의 영향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정부가 개설한 베이징 한국문화원의 한국어 강좌는 20~30대 중국 학생·직장인에게 인기가 많아, 수강 신청 몇시간 만에 수백명의 인원이 마감되곤 한다.



그러나 한국문화원은 중국인이 갖는 만큼 한국어 교육에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문화원은 지난 2월 새 학기를 시작하며 기존 한국어 강좌 20개를 12개로 줄였다. 한국에서 파견받는 한국어 강사가 2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는 이유였다. 이례적인 상황에 대한 질문에 문화원장은 “무료로 가르쳐주는 건데, 수업을 줄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2000년대 전후 뜨거웠던 한-중 관계가 불과 20여년 만에 이렇게 차갑게 식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다. 20~30년 뒤 한-중 관계가 어떨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때 양국이 대화해야 할 때, 이를 통역하고 번역할 사람이 너무 적지 않을지 우려된다.



haojune@hani.co.kr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세요 [한겨레 후원]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