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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양권모 칼럼] 이젠 윤 대통령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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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반쪽으로 치러졌던 광복절 경축식, 윤석열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정작 힘주고 싶었던 건 현실성도 없는 ‘통일 독트린’이 아니었을 것이다. ‘검은 선동 세력에 맞서 싸우자’는 메시지였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야당과 비판 세력을 “사이비 지식인” “반자유, 반통일 세력” “검은 선동 세력” 등으로 규정하고 독기 어린 공격을 퍼부었다. 국정운영 동력이 흔들릴 정도로 대통령 부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 상황에서, 그 책임을 반대 진영으로 돌리려는 심산이다. 자신에게 책임이 없으니 그간의 기조대로 독단·독선의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얘기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김건희 살인자’ 발언으로, 명품백 수수 사건의 조사 실무를 총괄했던 국민권익위 국장의 안타까운 죽음이 조명됐다. 국민권익위의 ‘명품백 사건’ 무혐의 종결 처리에 “20년 가까이 부패 방지를 해온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고 괴로워하던 해당 공무원은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 휴가 중이던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과는 별개로 이틀간 부산을 방문, ‘민정 시찰’을 하듯 시내 곳곳을 누볐다. 대통령실이 배포한, 화사한 부산 나들이 사진은 ‘김건희 리스크’가 가속될 것을 알리는 예령 같다.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한 윤 대통령에게는 이제 국정 성공보다 ‘정권 안보’, 자신과 배우자의 안위가 우선인 듯하다.

윤 대통령은 “윤석열 정권의 장세동”으로 불리는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하기 위해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7개월, 국방부 장관은 10개월 만에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김용현 후보자는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핵심 관련자다. 김용현 국방장관에게 부과된 첫 번째 소임은 군을 잘 단속해 ‘채 상병 사건’으로부터 대통령을 ‘경호’하는 것일 게다. 한편으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 국가 무력 기관인 군과 경찰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한 포석이다. 군에는 충암고 선배(김용현), 경찰엔 충암고 후배(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가 포진한 게 우연은 아닐 터이다.

윤 대통령이 말한 ‘검은 선동 세력’과 유관한 분야에 ‘거꾸로’ 인사가 또렷해지고 있다. 편협된 이념에 복무할, 강성 지지층에 호소할 인물을 발탁하기 때문이다. 언론장악을 위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반노동’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지명, 차별금지법에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는 수단”이라고 반대해온 공안검사 출신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지명 등 끝이 없다. 급기야 독립기념관장에 친일 역사관을 가진 인사를 임명해 모두가 경축해야 할 광복절을 두 쪽 나게 했다.

검찰의 대통령 부부 보위 행각은 너무 노골적이다.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를 위해 언론인과 야당 정치인 등 3000여명을 통신조회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이 했던 말로 돌려주면 된다. “독재 시대나 하던 짓” “게슈타포나 할 짓”이다. 얼마 전 검찰은 영부인을 ‘모셔’ 비공개 황제 출장 조사를 벌였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 절절매는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 결론을 낼지, 기대난망이다.

사실 108석의 소수 여당, 20%대의 지지율에도 윤 대통령이 버틸 수 있는 건 오로지 재의요구권(거부권) 덕이다. 총선 후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과의 만남에서 “거부권을 활용하라”고 큰소리친 이유가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 ‘노란봉투법’과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취임 이후 벌써 20·21번째 거부권 행사다. 이승만 대통령(45건)을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은 임기 내내 한 자릿수에 그칠 만큼 거부권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권력 남용을 경계하고, 국회 입법권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본인과 배우자 방탄을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당리당략에 따른 거부권 행사가 줄줄이다. 명백한 권한 남용으로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권한 남용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뻑하면 격노’하는 대통령이 염치마저 없으면 권력 행사에서 절제를 기대하기 어렵다. 총선에서 혹독하게 심판받고,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보수 당원과 지지층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 이쯤이면 실패를 인정하고 변화와 쇄신의 몸부림이라도 쳐야 할 터인데 외려 반동의 깃발을 펄럭인다. ‘검은 세력’ 탓으로 돌리고, 민심에 맞서 싸우기로 한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져 있다. 그 권한을 ‘정권 보위’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휘두를 것 같아 솔직히 무섭다.

경향신문

양권모 칼럼니스트


양권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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