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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전두환 찬양 ‘가고파’ 시인을 지자체가 기념하는 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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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노산 이은상 전문가 전점석 전 경남람사르재단 대표

한겨레

전점석 전 경남람사르재단 대표이사. 최상원 기자


“노산 이은상을 개인이 좋아하고 기념하는 것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 등 공기관이 그런 문제 있는 인물 또는 논란을 빚는 인물을 공적으로 기리는 것은 곤란하죠.”

경남 마산(현 창원시) 출신 시조시인 이은상(1903~1982)과 그의 대표작 ‘가고파’ 때문에 최근 마산 민심이 두쪽으로 쫙 갈라졌다. 창원시가 지난달 31일 마산의 대표적 축제인 ‘마산국화축제’ 이름을 ‘마산가고파국화축제’로 바꿨기 때문이다.

“마산은 ‘가고파’의 고향으로, 지역 특색을 담은 축제 명칭을 통해 창원시 축제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게 이름을 바꾼 이유이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가고파’는 1932년 이은상이 고향 마산을 그리며 지은 시이다. 이를 가사로 사용한 가곡 ‘가고파’는 마산을 대표하는 노래로 애창된다. 그러나 민주화운동단체들은 독재정권에 부역한 이은상의 전력을 문제 삼아 “가고파는 이은상의 또다른 이름”이라며 축제 이름에 ‘가고파’를 넣은 것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마산국화축제 이름은 ‘이은상’과 ‘가고파’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축제가 시작된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마산국화축제’로 불리다가, 2005년부터 2018년까지는 ‘마산가고파국화축제’를 사용했고,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다시 ‘마산국화축제’로 바뀌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또다시 ‘마산가고파국화축제’로 바뀐 것이다.

한겨레

경남 창원시 마산역광장에는 마산 출신 시조시인 이은상을 기리는 ‘가고파 노산 이은상 시비’(왼쪽)와 그를 비판하는 ‘민주성지 마산 수호비’가 나란히 서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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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은상을 10여 년째 연구하고 있는 전점석(73) 전 경상남도람사르재단 대표이사는 “개인이 아닌 지자체가 이은상을 공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잘못됐다. 관련 조례를 재개정해서 축제 이름에서 ‘가고파’를 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부터 이은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월간지 ‘피플파워’에 2017년 12월부터 2년 동안 ‘인물추적 이은상’을 연재했고, 2022년에는 ‘노산 이은상과 대통령’을 펴내기도 했다.

노산 이은상과 최근 ‘가고파’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기 위해 7일 경남 창녕군 우포늪 인근에 사는 전 전 대표를 찾았다.

“고교생 때부터 가고파를 좋아했어요. 부르면 부를수록 노래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죠. 특히 ‘가고파라 가고파, 보고파라 보고파, 돌아갈까 돌아가, 찾아가자 찾아가’에서는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아련하게 해요.”

그는 ‘가고파’를 “너무도 아름다운 노래”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가고파’를 지은 이은상에 대해선 “해방 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대한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독재 부역은 그 정도가 지나쳐서 일제강점기부터 그를 아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변절자라는 욕을 먹을 정도였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런 이은상의 행적을 뒤늦게 알고, 가고파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큰 배신감을 느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노산 이은상은 시조 2천여편, 비문 200여편, 저서 50여권, 교가 작사 수백편을 남겼는데 그의 작품은 정말 아름답다. 동시에 그는 해방 이후 죽을 때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심히 독재에 부역했다. 이런 이중성을 떼어놓고는 이은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창원시 올해 마산국화축제에
노산 시 ‘가고파’ 이름 다시 넣어
“이은상에 대한 지나친 추종은
더 욕보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

“시조 2천 편 등 정말 아름답지만
상상 초월할 정도로 독재 부역
6·25 겪으며 강한 지도자 희구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릴 필요”

그는 “이은상은 6·25전쟁 직후부터 이승만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활동을 시작했다”라며 한국전쟁은 이은상이 독재정권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은상은 6·25전쟁을 겪으며 난국에 처한 대한민국이 고난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쳐놓은 것보다 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강력한 지도자에게 반민주적 지도력은 불가피하다고 봤다”라며 “이은상은 강력한 통일론자이기도 했는데, 그가 주장하는 방식은 북진통일이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은상은 1960년 그의 고향인 경남 마산에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3·15의거가 일어나자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라고 비판하며, 이승만을 옹호했다. 이승만이 쫓겨나고 박정희가 들어서자 1972년 유신정권 지지성명을 내는 등 온갖 방법으로 박정희를 찬양했다. 박정희가 총 맞아 죽고 전두환이 들어서자 이번엔 전두환에 열광했다. 이승만부터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에 이르기까지 이은상의 독재정권 찬양은 한결같았다.

“이은상에게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은 새나라 건설을 위한 강력한 지도자, 그가 원하는 지도자였어요.” 전 전 대표는 이어 “너무도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남긴 이은상은 ‘그냥 글 잘 쓰는 문필가’, 더 정확히 말하면 ‘글을 써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글을 쓰는 글쟁이’일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마산국화축제’ 이름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나는 지금도 문득문득 가고파를 흥얼거린다. 개인이 가고파를 좋아하고, 노산 이은상을 기리는 것이야 무슨 문제가 있겠나. 그러나 창원시가 노산 이은상을 기리는 공적 행위를 하고, 축제 이름에 가고파를 넣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이은상에 대한 지나친 추종은 오히려 그를 욕보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축제 이름에 가고파를 넣는다고 축제가 더 빛나지도 더 풍성해지지도 않을 것”이라며 “그저 극우보수 세력의 불순한 의도만 느껴질 뿐”이라고 덧붙였다.

“노산 이은상을 숨길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이후 판단과 평가는 개인의 몫이고요.”

전 전 대표는 “노산 이은상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가고파 때문에 불거진 마산국화축제 이름 논란은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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