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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두렵지 않으면서도 두려운 여름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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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낮 최고기온이 31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 지난 30일 오후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어르신이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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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산 | 한겨레21부 탐사팀 기자



참, 덥다. 이보다 거친 표현도 있겠지만,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쉽지 않은 날이 심상치 않았다. 장마철 비는 참, 제멋대로였다. 해가 쨍쨍한 것을 보고 우산을 두고 나갔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젖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땀인지 비인지 모를 것에 젖은 채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반사적으로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 앞에서 방금 맞이한 날씨 욕을 하다 보면 어느새 이번 여름도 이렇게 지나가겠거니 하면서 용서를 하게 된다.



오래전, 여름철이면 선풍기 몇대로 가족이 여름을 났다. 좌우로 회전하는 선풍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억지로 선풍기 머리를 끌어안고 있다가 등짝을 얻어맞기도 했다. 비닐에 얼음을 넣어두고선 선풍기 뒤에 놓는다거나, 분무기로 물을 뿌리거나 하며 조금이라도 시원해질 수 있는 짓은 대부분 해 본 듯하다. 선풍기와 함께하는 열대야는 죽음과 싸우는 일이기도 했다. 당시에 누군가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날마다 선풍기를 곁에 두고 잠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쪄 죽을 것 같았다. 다행히 살아남았다. 선풍기로만 난 여름은 불편했고, 늘 찝찝했다.



성인이 되고도 몇해가 더 지나서야 집에 에어컨이 들어왔다. 이젠 그냥 바람이 아닌 냉방 바람을 맞을 수 있겠거니 싶어 기뻤다. 하지만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된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에어컨은 대부분 관상용이었다. 그를 쳐다보면서 여전히 선풍기를 안고 있었고 그렇게 여름을 났다. 몰래 에어컨을 켜보기도 했지만 엄마는 ‘뭐가 덥냐’면서 금세 꺼버리셨다. 그때 엄마는 땀에 젖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엄마에게 더운 날은 없었을까. 꿉꿉하고 찝찝한 여름은 변하지 않았다. 이젠 억지로 전원을 끄는 사람이 없어선지 에어컨도 쉽게 켜진다. 돌이켜보면 몇년 새 찝찝한 여름의 기억이 없다. 그사이 100년 만이라는 수치는 쉽게 뛰어넘는 무더위와 장맛비가 왔지만, 솔직히 말하면 큰 두려움은 없다. 버튼 하나면 아주 쉽게 그 더위를 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예전에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버틴 여름의 나날들은 추억 속에나 남았다. 주변을 봐도 공간을 차지한다며 아예 선풍기를 두지 않는 가정도 많아졌다. 꿉꿉하고 찝찝한 여름은 선풍기와 함께 사라졌다.



인공적인 차가운 바람, 이 쾌적한 느낌이 좋다가도 문득 생각이 든다. 더위를 잊는다는 게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걸까 하는. 전기 요금이 값싸니 누구든 에어컨을 켜지 않을 이유는 없다. 에너지를 아끼자니 이 쾌적함은 놓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 오락가락하는 이 비가, 40도에 육박하는 이 더위가, 나와 모두가 아주 편하게 쾌적함을 유지했던 날의 누적된 대가인 것 같다는 생각은 도저히 지울 수 없다.



뉴스 속 에너지를 아끼자는 얘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상가 앞에서 추위가 느껴질 정도의 바람을 맞을 때면 환경운동은 상상 속에서나 이뤄지는 것 같다. 아파트 단지에 키 높이만큼 쌓여 있는 플라스틱을 볼 때면 얼마나 많은 자원이 쉽게 버려지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에너지나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 이뿐일까. 기후위기를 막을 임계점은 어쩌면 이미 넘어서 버렸고, 우리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이제 다시 선풍기로 돌아갈 의지를 잃었다. 내년의 여름은 두렵지 않으면서도 너무 두렵다.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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