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7 (화)

뻔한 건 재미 없잖아?…고민시 ‘변신은 나의 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배우 고민시. 넷플릭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도 모르는 제 얼굴을 발견해주는 감독님을 만나길 늘 바랐어요.”



배우 고민시의 바람이 이뤄졌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통해서다. 광기 어린 소시오패스 유성아를 연기한 그에겐 요즘 ‘파격 변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번 작품을 통해 빛을 발했지만, 사실 고민시의 변신은 처음이 아니다. 매 작품마다 그는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지난달 23일 공개된 8부작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2주 연속 국내 톱10 시리즈 부문 1위를 지키고 있다.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문 4위에도 올랐다. 흉악 범죄로 인해 일상이 파괴된 평범한 이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에는 ‘더 프로그’(The Frog)라는 영어 제목이 붙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를 뜻한다. 세련된 미장센에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이야기 전개가 불친절하고 인물들의 서사가 부실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한겨레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고민시의 열연이다. 그는 이번 역할을 통해 ‘보기 드문 코리안 비치(Korean bitch)’라는 별명을 얻어냈다 . 그가 연기한 유성아는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자’로, 공감 능력이 결여돼 있으면서 자기연민이 심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처럼 흔적을 남긴다. 심드렁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불쑥 난폭해진다.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유성아는 스릴러의 핵심 장치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인물이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고민시가 열고 고민시가 닫았다고 볼 수 있다”고 호평했다.



그런 유성아를 연기하기란 고민시에게도 부담스러운 과제였다. 지난달 26일 인터뷰에서 그는 “한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인데다 대본 자체가 주는 기운이 서늘하고 묘했다. 비슷한 장르의 작품을 보지 않고 대본 안에서만 끊임없이 파헤쳤다”고 말했다. 그는 척추뼈를 드러내 동물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원래 체중에서 5∼6㎏을 감량했다.



한겨레

영화 ‘마녀’ 속 고민시.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고민시는 2017년 데뷔 이후 대부분의 작품에서 새로운 얼굴이 되길 시도했다. 영화 ‘마녀’(2018)에서는 주인공 구자윤(김다미)의 통통 취는 친구 명희 역할을 맡았고,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2020)에서는 발목 부상으로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한 까칠한 고등학생이 됐다. 한국방송(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2021)에서는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는 간호사를 연기했다. 영화 ‘밀수’(2023)에서는 1970년대 해녀들의 밀수를 돕는 다방 마담 고옥분이 됐다. 주로 몸이 고생한다는 것만 빼면 고착화된 이미지가 없다. 이건 그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재미없다고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외적인 모습이 어떻게 망가지건, 혹여나 결과가 안 좋아도 다양한 역할들에 도전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한겨레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에 출연한 고민시. 넷플릭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뒷받침하는 것은 안정적인 연기력이다. 21살에 본격적으로 배우 준비를 시작한 그는 연극영화과 출신이 아닌 탓인지 번번이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대신 스스로 단편영화 ‘평행소설’(2016)의 각본을 쓰고 연출·주연을 맡았다.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연기력을 다졌다. 고민시 스스로 자신의 강점을 “쉴 새 없이 일한다는 것”이라고 꼽은 것처럼, 이후 8년간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단역, 조연, 주연 등으로 출연하며 쉴 새 없이 연기 경험을 쌓았다. 그는 작품을 함께한 감독들로부터 “카메라 앞을 안 떠난다. 촬영 스태프들이 애원할 정도”(‘밀수’ 류승완 감독), “그 세대 배우 중 가장 열심히 하는 배우”(‘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완일 감독)라는 평을 듣는다. ‘스위트홈’에서 발레를 하는 짧은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7개월간 발레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한겨레

영화 ‘밀수’의 한 장면. 외유내강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작은 역할로도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마녀’에서는 친구 구자윤을 달래주며 귀공자(최우식)의 뒤통수에 찰진 욕을 쏟아낸 장면으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월의 청춘’에서는 비극적인 역사에 희생된 이들의 아픔을 보여줌과 동시에 애틋한 멜로 연기를 펼쳐 2021년 한국방송 연기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밀수’에서는 1970년대 다방 마담 고옥분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갈매기 눈썹을 하고 나타났다. 고옥분을 ‘상스럽고 천박하면서도’ 발랄하게 소화해낸 덕에 2023년 청룡영화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한겨레

한국방송(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서 간호사 김명희 역할을 맡은 고민시의 모습. 한국방송 제공


이처럼 성실하게 쌓은 연기 경험과 다양한 시도 끝에 마침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유성아를 만났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오월의 청춘’ 속 간호사 김명희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유성아라는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해냈다”며 “일부러 새로운 역할을 찾아다닌다기보단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게 임하는, 캐릭터 소화력이 좋은 배우”라고 평가했다.



고민시의 다음 얼굴은 무엇일까. “다음 작품은 로맨스나 정통 사극을 해보고 싶어요. 이번 작품을 발판 삼아서,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캐릭터를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거든요. ‘늘 다음이 궁금한 배우’라는 수식어를 갖는다면 좋겠어요.”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딥페이크’와 ‘N번방’ 진화하는 사이버 지옥 [더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