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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티메프 ‘고객돈 막 썼다’는데…공정위 “유용 미처 생각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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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큐텐 구영배 대표,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 등이 ‘위메프·티몬 미정산 사태 현안 질의’에 출석한 30일 오후 국회 앞에서 티몬·위메프 정산지연 사태 피해자들이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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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위메프·티몬 미정산 사태 관련 현안 질의’에선 연간 거래액이 수조원에 이르는 대형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의 부실한 자금 운용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방치한 규제당국을 향한 비판도 쏟아졌다. 그러나 구체적인 피해 수습 방안은 물론 예상 피해 규모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구영배 큐텐 대표는 이날 정무위에서 미정산 사태 수습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의 규모에 대해 묻자 “그룹이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800억원”이라면서도 “다만 그 돈도 바로 정산 자금으로 쓸 수는 없다”고 답했다.



구 대표는 위메프와 티몬의 최대주주인 큐텐 지분 3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위메프·티몬 정산 지연 사태 이후 구 대표가 공식 석상에 선 건 처음이다. 정무위는 전날 구 대표를 비롯해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에게 출석을 요구했지만 확답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현안 질의 직전 이들이 국회 회의장에 나타나며 기자 수십명이 몰려 회의가 잠시 지연되기도 했다.



구 대표는 “제가 가진 모든 걸 다 내놓겠다”며 “큐텐 지분 가치가 잘나갔을 때는 5천억원까지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이 사태가 일어나고는 (평가액을 알 수 없다)”고 했다. 큐텐은 비상장사인 터라 가치 평가가 쉽지 않고 부채가 자본보다 많을 정도로 재무 상황이 악화돼 일찌감치 구 대표의 큐텐 보유 지분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구 대표가 이를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위메프와 티몬의 중소상공인 미정산 금액이 지난 25일 기준 2134억원에서 갈수록 불어나고 있으나, 당장 가용한 재원은 수백억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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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위메프·티몬 미정산 사태 현안 질의’에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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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막기’ 의심을 받는 주먹구구식 자금 관리 실태도 사실로 확인됐다. 구 대표는 “위시 인수 자금으로 지급한 400억원에 위메프와 티몬의 판매 대금이 포함됐다”며 “다만 이는 한달 내에 바로 상환했다”고 설명했다. 위시는 큐텐이 지난 3월 인수한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이다. 판매 대금을 다른 기업 인수 자금으로 가져다 썼다는 이야기다. 구 대표 말대로 인수 자금으로 가져다 쓴 뒤 상환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큐텐 자금 추적 과정에서 드러난 강한 불법의 흔적이 있어서 검찰에 수사 의뢰를 했고 주요 대상자 출국 금지 등 강력 조처를 요청했다”며 “최근 저희와의 관계에서 보여준 행동이나 언행을 볼 때 양치기 소년 같은 행태들이 있기 때문에 말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금융당국은 그간 티몬과 위메프 쪽에 자금 조달 계획 제출을 요구해왔으나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구 대표는 “단 한푼도 제 사익을 위해서 횡령한 것이 없다”며 “이 문제는 사기나 의도를 가지고 했다기보다 십수년간 시장에서 누적돼온 행태”라고 주장했다. 고의로 자금을 빼돌린 게 아니라, 이커머스 시장의 출혈 경쟁과 가격 할인으로 손실이 커진 탓이라고 항변한 셈이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정부를 질타했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은 “금감원이 위메프·티몬과 경영개선 업무협약(MOU)를 체결했으나 아무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개된 지난해 12월 협약서를 보면, 금감원은 위메프·티몬 쪽에 미상환 및 미정산 잔액의 신탁·보증보험 가입 등 보호 의무를 부과할 수 있으나 실제 적용되진 않았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수많은 판매업자들이 정산 주기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받아주지 않았다”며 “결제한 금액이 정산될 때까지 70일간 공중에 떠돌아다니니 이상한 데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판매 대금 정산 주기와 관련해선 당사자 간 계약을 통해 정하도록 하는 자율 규제를 추진했다”며 “정산 대금 유용 문제는 미처 생각 못 했다. 제도적으로 충분히 완비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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