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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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에서는 ‘데버린’이 역대 R등급 영화 최대 오프닝 기록을 쓸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액수가 얼마냐의 문제. 대략 북미 박스오피스 1억7000만달러 정도로 보고 있네요. 현재 R등급 오프닝 최대 기록은 2016년 ‘데드풀1′이 갖고 있는 1억3200만달러입니다. 예상대로라면 ‘데버린’은 ‘인사이드 아웃2′도 제치고 올해 최고 북미 오프닝 기록을 쓰게 됩니다. 글로벌 오프닝은 최대 3억9000만달러 예측까지 나오네요. 그럼, 저는 어땠느냐고요.
전 재밌게 봤습니다. 마블코믹스 캐릭터가 주는 재미도 있지만, 제가 젤 아래에 말씀드릴, 제게(어쩌면 제게만) 와닿은, 이 영화의 울림이 있었거든요. 그건 젤 마지막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그렇다면 여러분께 추천하느냐, 전제 조건이 붙습니다. 기본적인 몇 가지는 알고 가셔야 합니다. 모든 마블 영화를 다 보실 필요는 없지만, 데드풀이 어떤 캐릭터인지는 대략이라도 아셔야 하고(불치병 치료하려다 얼굴이 망가지고 그 대신 초능력을 얻었다), 휴 잭맨이 은퇴를 선언했던 영화 ‘로건’ 내용도 대충이라도 아셔야(‘로건’에서 왜 죽었는지 정도) 이해가 됩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배우 개그가 많아서 신상에 대한 팩트도 아시면 좋습니다. 데드풀로 나오는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의 실제 아내가 블레이크 라이블리고, 그녀가 출연했던 미드가 ‘가십걸’이라는 것, 휴 잭맨이 최근에 이혼했다는 시시콜콜한 팩트도 대사에 다뤄지거든요. 예를 들어 오프닝 장면에서 데드풀이 “인간의 몸에는 뼈가 206개 있는데, 내가 ‘가십걸’을 볼 때는 207개가 된다”고 성인용 대사를 던지는데 ‘가십걸’이 뭔지 알아야 이해가 되는 식이죠. 휴 잭맨의 이혼 사실은 “이혼하더니 몸이 망가졌다”며 데드풀이 울버린을 까는 대사에 나옵니다. 이런 입담도 ‘데드풀’고유의 재미죠.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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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대사는 전체 이야기를 좌지우지 하는 건 아니라서 놓쳐도 크게 문제는 안 되는데, 꼭 아셔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데버린’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팩트,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뒤흔들어놨던 디즈니·21세기폭스 인수전입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엑스맨)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당시 인수전의 결과이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자, 우선 한 가지. 여러분이 여기저기 기사를 보시다보면 21세기폭스와 20세기폭스를 다 보실 수 있을텐데, 21세기폭스는 20세기폭스의 모회사입니다(였습니다). 영화사는 20세기폭스고, ‘데버린’에서 데드풀이 계속 언급하는 것도 20세기폭스입니다. 20세기폭스에 밑줄 쫙.
아이언맨과 헐크,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등등은 모두 마블코믹스가 창조해낸 캐릭터죠. 데드풀과 울버린(엑스맨)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데드풀과 울버린만 다른 집에서 살았어요. 마블이 가세가 기울면서 데드풀과 엑스맨 등의 영화 판권을 폭스에 팔았거든요. 그러니 만화에서는 모두 함께 등장할 수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데드풀과 울버린은 딴 집에서 따로 놀아야 했습니다. 2009년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즉 MCU가 날개를 달았는데도 데드풀과 울버린은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21세기폭스가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고 세상이 떠들썩했던 것이 2017년. 디즈니뿐 아니라 소니와 컴캐스트까지 뛰어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디즈니가 인수에 성공했고, 공식 발표는2018년6월이었습니다. 워낙 큰 건이라 미국 법무부의 반독점 심사까지 거쳐야 했어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이 취항하는 각국 승인을 득해야 완료되는 것처럼, 디즈니·21세기폭스 인수도 여러 나라 거쳐서 2019년 3월에야 완료됐습니다. 이때가 돼서야 폭스가 영화 판권을 갖고 있던 데드풀, 울버린(엑스맨), 판타스틱4 등이 디즈니에 품에 안기게 됩니다. 이제 다른 마블 캐릭터들과 같이 영화에 나올 수 있게 된 거죠.
2019년 3월에도 밑줄 쫙. ‘데버린’ 초반부에 데드풀이 어벤저스가 되고 싶다고 면접을 보러 가는데요, 그 자리에서 퇴짜를 맞죠. (면접관은 ‘아이언맨’ 감독 존 파브로) 잘 보시면 화면에 달력을 비춰주면서 면접 시기가 2018년 3월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때는 아직 디즈니가 폭스를 인수하기 전. 당연히 아직 폭스의 자산이었던 데드풀은 디즈니의 MCU 멤버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멤버 퇴짜’라는 스토리로 풀어내며 데드풀의 6년 후, 즉 2024년 오늘의 모습을 보여주며 본격적인 도입부로 들어갑니다.
‘데버린’에 보면 데드풀과 울버린이 죽어라고 싸우는(그러나 절대 죽지는 않는) 장면이 나오는데, 황무지에 버려진 20세기폭스의 대형 로고가 아주 잘 보이실 거에요. 그 로고가 그래서 거기에 그렇게 박혀 있는 거고요. 데드풀이 ‘마블 호구 새끼들’ 이라던가 ‘나는 디즈니랜드로 간다’라거나 폭스를 까는 것도 같은 배경이고요. 그런 맥락에서 데드풀이 “나는 마블의 예수”라고 선언하는 ‘데드풀과 울버린’은 폭스 시절에 안녕을 고하고 디즈니 마블의 캐릭터로 부활하는 야심찬 도전장이기도 합니다.
스토리는 사실 그게 전부예요. 둘이 이제 다시 시작한다. 부활시킨다. 중요한 건 스토리가 아니고 캐릭터입니다.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운명이 뒤바뀐 여러 캐릭터들의 깜짝 출연이 많습니다. 카메오 수준이 아니고 단역급은 되는, 분량 어느 정도 들어가는 출연자들입니다. 누구라곤 말씀 안 드릴게요. 모르고 보셔야 재밌습니다. 그래야 반갑거든요. 저는 딱 1명 알고 봤는데, 몰랐으면 더 재밌었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여기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Hugh Jackman as Wolverine/Logan in 20th Century Studios/Marvel Studios' DEADPOOL & WOLVERINE. Photo courtesy of 20th Century Studios/Marvel Studios. © 2024 20th Century Studios / © and ™ 2024 MARV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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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 ‘로키’의 시간선 붕괴 설정을 가져왔는데, 이건 모르고 보셔도 무리 없습니다. 시간 변동 관리국이라는 부서가 있고, 멀티버스 개념 때문에 시간선이 엉키고 붕괴되는 걸 관리한다는 것만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말씀드렸듯, 이 영화는 스토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서요. 스토리가 아니라 캐릭터, 특히 캐릭터들의 등장을 통해 마블이라는 전체 브랜드 IP의 위상을 되살려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두 영웅이 여기에 이렇게 나서노라, 이게 중요한 거고요.
변두리 얘기로, 예고편 주제가이자, 극적인 대결에 흐르는 마돈나의 ‘Like a prayer’를 쓰려고 라이언 레이놀즈가 마돈나를 직접 찾아가 만났다고 하네요. 이 곡은 라이선스 비용만 준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돈은 기본이고 ‘팝의 여제’가 사용을 허락해야 가능한 곡이라는데, 다행히 마돈나가 한껏 고개를 숙인 라이언 레이놀즈에게 사용 허락도 해주고 장면도 코치해주고, 얼마 전 미국 시사회에서 레드카펫도 밟아주셨더군요.
위에 라이언 레이놀즈 아내인 블레이크 라이블리 말씀을 드렸는데, 그녀가 이 영화에 직접 출연도 합니다. 예고편에 보시면 금발 머리 데드풀(레이디풀)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블레이크 라이블리입니다. 데드풀인 라이언 레이놀즈가 그보다 훨씬 앞부분에 “얼마 전 출산을 했는데 날씬해서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며 레이디풀을 추켜올리는 대사도 있어요. 아내 자랑입니다. 실제로 그녀는 작년 초에 넷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제가 가장 아쉬웠던 건 바네사와 데드풀의 관계였습니다. ‘데드풀2′에서 MTV 언플러그드 버전으로 아하(A-HA)의 ‘테이크 온 미(Take on me)’가 흘렀던 그 장면을 기억하신다면 더더욱. 제가 생각하는 마블 최고의 커플인 닥터 스트레인지와 크리스틴에 이어 애틋한 영혼의 동반자인 바네사와 데드풀을 어찌 이렇게 서먹하게.... 마블은 각성하라!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에 등장하는 '도그풀'과 '데드풀'의 러브샷. 도그풀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실제 강아지라고 합니다. 영국 '못생긴 개 경연대회'에서 당당히 입상했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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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궁금하실지도 모르는 사실. 데드풀로 복장하고 등장하는 댕댕이가 있는데요, 너무 특이하게 생겨서 컴퓨터 그래픽인가 했는데, 아니고 진짜 강아지입니다. 이름하여 도그풀. 영국 ‘못생긴 개 경연대회’에서 당당히 입상한 강아지래요. 본명은 페기. 라이언 레이놀즈가 꼭 그 강아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데드풀의 강아지 버전이 아니겠느냐며.
크레딧 다 지나가고 쿠키 하나 있습니다. 꼭 보세요. 크레딧 올라가는 중간에 과거 엑스맨 시리즈 촬영장 영상을 보여주는데 새삼 이 프랜차이즈가 얼마나 오래 사랑받아왔는지 확인이 되더군요. 덕분에 전혀 지루하지 않게 쿠키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쿠키에선 ‘데버린’ 줄거리상 반전이라 할 내용을 보여줍니다. 재밌는 장면입니다. 보시면 “아, 그랬던 거야? 깔깔깔” 하시게 됩니다.
끝으로. 레터 서두에 제가 이 영화에서 울림을 느낀 부분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제겐 두 문장의 대사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You never fucking matter. (너따윈 절대 의미있는 자가 될 수 없어)
You can finally matter. (너도 이제야 의미있는 사람이 됐군)
각각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에 나오는 대사인데요, 전 이 영화의 키워드가 ‘matter’가 아닐까 합니다. 의미가 있다, 중요하다. 데드풀은 세상에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며 어벤져스에 지원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하죠. 나중엔 바네사에게 의미있는 남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간절하게. 울버린은 “내가 실망시킨 그 많은 사람들”을 언급하며 괴로워하다 후반부에 말합니다. “한 번만이라도 찰스가 믿었던 사람이 되고 싶어.” 이 대사에 맘이 찌르르해지더군요. 사랑하는 그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건 영웅 서사에서만 통하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는 모두 자신을 믿어준 그 사람이 믿어준 그 모습으로 잠시라도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있지 않던가요. 둘은 세상을 위해 또 사랑을 위해 싸우면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고 그들을 지웠던(아, 판권 싸움이여) 세상을 되살리기 위해(MCU 부활하나) 일어섭니다.
정말 끝으로, 데드풀의 룸메이트인 눈먼 할머니의 말이 있습니다. “고통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화든 영화든 모든 영웅 서사에 등장하는 고통은 결국 인간 본질을 알려주는 장치라는 점에서 보잘 것 없는 일상의 숙명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찮은 통증부터 감당할 수 없는 고통까지, 용기내 직면할 때만이 삶은 나아간다, 그런 이야기도 되지 않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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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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