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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토)

‘원전 수주’ ‘밸류업’에 찬물 끼얹는 두산 사태… 정부·국회가 나서야 할 때 [더 나은 경제, SD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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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체코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예정된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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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정부는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두코바니 지역에 건설되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2기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선정했다.

당시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각료회의를 마친 뒤 우선협상대상자를 직접 발표하면서 “모든 기준에서 한국이 제시한 조건이 우수했다”고 밝혔었다

피알라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테멜린 원전에 2기를 추가 건설하는 방안을 한수원과 논의할 것”이라며 “1기당 2000억코루나(한화 약 11조9000억원)가 들어가는, 체코 현대사에서 가장 비싼 계약으로, 미래 세대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고 수용 가능한 가격에 충분한 전력을 원한다”고 강조했었다.

체코는 두코바니에 2기, 테멜린에 2기 등 모두 원전 4기를 새로 짓는 사업을 추진 중인데, 먼저 시작하는 두코바니 2기의 사업비만 총 24조원 규모다. 향후 한국은 테멜린 원전 건설 수주에도 유리한 입지에 설 전망이다.

한수원은 앞서 2022년 3월 한전기술, 한국원자력연료, 한전KPS,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과 함께 ‘팀코리아’를 결성하고, 두코바니 원전 입찰에 뛰어들었다.

윤석열정부도 총력으로 체코 원전 수주를 지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에 참석해 페트르 파벨 대통령과의 면담을 비롯해 지금까지 모두 3차례 체코와의 정상급 회담을 했고, 안덕근 산업통산자원부 장관 역시 두 차례 특사 신분으로 체코를 찾는 등 지난 4월 이후에만 3차례 방문해 우리 원전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설득했었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고사 직전이던 생태계는 현 정부의 세일즈 외교로 모처럼 살아나고 있다. 그 결과 폴란드 퐁트누프에 원전 4기(약 40조원 규모)를 건설하는 사업과 관련해 양해각서(MOU)를 맺었으며, 불가리아 코즐루두아 원전 시공 사업에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여기에 새 원전 건설에 큰 관심을 보이는 스웨덴과 핀란드, 네덜란드, 영국까지 우리 정부의 총력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최대 10기의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모처럼 우리 경제에 큰 활력이 될 수 있는 이번 소식에 곧바로 찬물을 끼얹는 사태가 발생했다. 자칫 원전 수주의 경제적 낙수효과마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팀코리아의 핵심 멤버인 두산이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전한 탓이다.

두산은 지난 11일 원전 기업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인적 분할해 계열사 두산로보틱스에 완전 자회사로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다. 두산은 이를 통해 ▷클린 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 및 첨단소재 등 3대 부문으로 사업을 재편해 미래 성장산업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인적분할·합병으로 인해 그룹 지배주주의 이익은 극대화하는 반면, 개인주주와 장기 투자자들의 주식 가치는 크게 훼손될 처지에 놓였다.

두산은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로보틱스로 넘기면, 두산에너빌리티가 약 7200억원의 부채를 덜고, 비핵심 자산도 함께 매각해 현금 4800억원을 추가 확보하게 된다고 설명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다른 평가가 나온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매출 9조7589억원, 영업이익 1조3899억원을 기록, 두산에너빌리티가 올린 연매출 17조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알짜 회사다.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97%를 차지하고 있다.

두산밥캣은 또 2022년과 2023년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지분 46.06%의 몫으로 각각 830억원, 714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이 빠져나가면 연간 660억원의 금융(이자)비용을 줄이는 대신 700억~800억원대의 배당금을 못 받게 된다. 특히 2년 넘게 체코 원전 수주 소식을 기다리던 장기 투자자들은 이번 결정으로 주가 상승은 고사하고 주주가치 훼손과 주가 하락까지 떠안게 됐다.

일각에선 밥캣과 같은 초우량 기업을 매출 규모 500억원대에 설립 후 단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두산로보틱스에 합병시키는 의사 결정이 비합리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12일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논평을 내고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두산에너빌리티의 70% 일반주주도 당황스럽고, 연매출이 10조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3000억원이 넘는 상장사 두산밥캣의 일반주주도 매출 기준 183분의 1이며, 192억원의 영업손실까지 낸 두산로보틱스에 같은 기업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는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두산에 따르면 두산로보틱스 1주당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0.0315651주로 계산해 교환된다. 이에 따라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하고 있는 주주는 3.2주의 두산로보틱스 지분을 받게 되고, 기존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은 감자에 따라 75주를 받게 된다.

코스피 상장사인 두산로보틱스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12배다. 실제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12배 높아 비정상적으로 고평가된 상황인데 반해 두산에너빌리티의 PBR은 1.87배로 실제 가치보다 사실상 저평가되어 있다. 결국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의 두산밥캣 경영권 프리미엄은 완전히 무시하고 단순히 주가 비율과 시가총액으로 합병비율을 계산해 일반 주주가치를 훼손한 셈이다.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 일반주주들이 보유한 54%의 지분에 대해 포괄적 주식 교환으로 100% 지분을 확보한 뒤 상장 폐지하고 완전 자회사로 두겠다는 계획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신주 3406만 1202주를 교부하고, 이를 두산밥캣 주식 1주당 0.6317462주 비율로 교환하는데,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교환 비율이 1대 0.63으로 정해지게 된다. 지난 11일 기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시총이 각각 5조2130억원, 5조5291억원으로 비슷했기에 이같이 정해졌다.

이쯤 되면 이번 두산의 이번 인적분할·합병은 원전 수주의 경제적 효과를 저하할 뿐만 아니라 올 초부터 대통령과 정부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시장 저평가) 해소를 위한 핵심 정책으로 추진해 온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일각에선 두산의 ‘횡포’는 습관적이라 더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두산에너빌리티가 202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해수 담수화 플랜트 건설 공사,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수주 등을 연달아 체결하며 주가 상승이 기대될 때 두산이 두산에너빌리티 보유 지분 34.97% 가운데 4.47%를 블록딜로 매각하며 주가를 끌어내린 전적이 있는 탓이다.

이번 사태를 정부와 국회가 직접 나서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연일 분출된다. 실제로 정부와 국회는 이를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합법을 가장한 탈법에 가까워 보인다”고 언급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 역시 이번 두산 사태를 방지할 법안을 발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당 모두 9월25일 두산에너빌리티 임시 주주총회 이전까지 이번 사태의 향방을 지켜보며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2일 한국거래소의 증시 개장식을 찾아 “(기업) 이사회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 역시 추진할 것”이라고 언급했으며, 최근 금융당국 역시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선 두산 지배주주를 두고 사업 개편이 아닌 도덕성 상실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합병 후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 지배력은 약 14%에서 42%까지 높아지면서 배당이 늘게 된다. 앞서 두산 지배주주에 대한 과도한 보수 지급이 지적된 바 있다. 지난해 3월 의결권 자문사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당시 두산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 승인의 건에 대해 “지배주주에 대한 과도한 보수 지급과 주식 기준 보상 부여 계획 미공시, 독립적 보수 심의기구 부재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고 밝혔었다. 실제 당시 박정원 회장은 전문경영인의 무려 5배인 84억2900만원의 보수를 받아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두산의 이번 인적분할·합병은 ‘원전 수주를 통한 경제 활성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밸류업을 통한 한국 증시 부흥’, ‘선진화된 지배구조 확립’ 등 거의 모든 경제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와 국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정훈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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