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6 (금)

[단독] 위스키 성지 남대문시장, 불법 상품권 단속 ‘제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일부 위스키 판매점들, 탈세 목적으로 꼼수

중기부는 이런 사실 알고도 단속 없이 방치

자영업자들 “불법 영업장들 가만히 놔두는 현실 분통”

조선일보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발베니 더블우드12년(왼쪽)'과 '맥캘란 12년 쉐리오크(오른쪽)'/조선D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의 한 지하상가. 이곳은 위스키를 다른 곳보다 싸게 팔아 마니아들 사이에서 ‘위스키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기자가 찾은 총 8곳의 위스키 판매점 중 5곳이 온누리상품권을 받고 있었다. 현행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전국 전통시장과 상점가 등의 부흥을 위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은 주류 소매업, 주류 도매업을 하는 이들이 활용할 수 없다.

현행법상 ‘주류 소매업’은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으로 등록될 수 없는데, 전통시장 내에서 리쿼샵(주류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들이 사업자등록은 다른 업종으로 해두고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으로 등록하는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온누리 상품권으로 다른 매장들보다 5~10%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소비자들 사이에서 ‘위스키 성지’로 불리는 전통시장 내 일부 주류 판매점들이 탈세 등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21일 파악됐다.

세무 당국의 추적을 피할 목적으로 상대적으로 탈세가 용이한 ‘지류(종이) 온누리상품권’만 받는 업장도 있었다. 남대문시장에선 온누리상품권을 받는 리쿼샵 5곳 중 3곳은 ‘지류 온누리상품권’만 취급하고 있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상점 관계자는 “온누리상품권은 지류, 충전식 카드형, 모바일의 형태로 발행되는데, 지류 온누리상품권은 다른 두 가지 상품권에 비해 세무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쉽다”고 했다

지류만 받는 한 주류 판매점 측은 “최근에 주류판매점이 온누리상품권을 받은 게 문제가 돼 현재는 기록이 남는 모바일이나 카드형 온누리는 안 받고, 지류만 받고 있다”며 “원래는 지류도 받으면 안 되는데 원하면 결제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 업장 측은 “카드나 모바일 온누리 결제는 국세청에서 다 보고 있는데, 지류는 건물 임대료나 관리비를 낼 때 쓸 수 있어서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류 상품권만 받는 다른 주류 판매점 직원 A씨는 “모바일이나 카드형은 소득이 잡혀서 세금 계산에 불리해 지류만 받고 있다”며 “카드형 온누리가 아닌 단순 카드결제는 부가세 10%가 더 붙는다”고 말했다. 상품의 현금가와 카드 가격이 다른 것 역시 불법이다.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의 B업체,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C업체, 서울 강남구 영동시장의 D업체 모두 지류, 카드형, 모바일 온누리상품권을 받고 있었다. B업체, D업체는 인스타그램에서 “모든 종류의 온누리상품권을 다 받는다”고 홍보를 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서울 시내의 한 전통시장 안에 위치한 리쿼샵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인스타그램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누리상품권을 발행하는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런 실태에 대한 단속 여부를 묻는 본지 질의에 “사전 단속을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중기부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면 업체 측에 소명을 요구하고, 실제로 사업자등록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등을 살펴본다. 환전 보류 조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제보가 들어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온누리상품권 단속을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전통시장에 입점한 모든 온누리 가맹점을 단속할 수가 없어서 시장 상인회를 통해 주류 소매업자가 온누리상품권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교육하고 있고, 이 문제와 관련해 국세청과도 협의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온누리상품권을 받지 않고 술을 판매하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서울 시내에서 한 주류 판매점을 운영하는 유모(40)씨는 “일반 주류 판매 자영업자들은 제 살 깎아먹기식으로 마진을 줄여가며 경쟁하는데, 시장 내에 위치한 리쿼샵들은 온누리상품권을 받아서 우리보다 낮은 가격에 손님을 끌어모아 ‘위스키 성지’로 떠오른 걸 보면 화가 난다”며 “솔직히 나도 지난 3월에 시장 쪽으로 자리를 옮겨 온누리상품권을 받아보려 했었다”고 했다. 유씨는 “하지만 조만간 이러한 위스키 불법 영업이 막힐 거란 소문을 듣고 일단 지켜봤는데 아직도 상황이 똑같아 이를 지켜만 보는 중기부에게도 화가 치민다”고 했다.

[김병권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