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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6 (월)

‘21세기 정치깡패’ 극렬 유튜버… 수퍼챗·조회수 노려 극단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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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폭언·욕설로 갈등 증폭시키고

여당 전대서 폭력… 후원금은 더 챙겨

조선일보

지난 15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 충청권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일부 유튜버와 지지자 등이 몸싸움을 벌이자 경호 요원들이 이를 말리고 있다.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는 16일 “선거운동원과 지지자들에게 전당대회의 의미를 분명하게 안내해 어제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 공문을 당대표 후보 측에 보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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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충청권 합동 연설회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는 유튜버 간 몸싸움에서 시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는 16일 폭력 사태에 연루된 3명에 대해 전당대회 행사장 출입을 금지하고, 경찰에 이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국민의힘은 이 3명은 모두 유튜버라고 밝혔다. 이들은 정치인들을 쫓아다니며 유튜브로 현장을 생중계하고 특정 정치인을 공격하는 ‘극렬 유튜버’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급기야 여당 전당대회장에서 육탄전을 벌였고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과거 정당판에서 활개 친 ‘정치 깡패’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선관위와 현장을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유튜버인 김모씨는 15일 충청권 연설회 현장을 유튜브로 생중계하면서 한동훈 후보가 연설 무대에 오르자 여러 차례 “배신자”라고 외쳤다. 자기 유튜브 채널에 원희룡 후보를 지지하는 영상을 올려왔던 김씨는 지난 12일 대구 합동 연설회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했다. 현장에 배치된 질서 유지 요원과 국민의힘 당직자들은 김씨를 행사장 밖으로 내보내려 했는데, 한동훈 후보를 지지하는 방송을 해온 유튜버 황모씨가 김씨 목 뒤를 치면서 양측 몸싸움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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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 충청권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일부 유튜버와 지지자 등이 몸싸움을 벌이자 경호 요원들이 이를 말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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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이라고 쓴 종이를 머리에 붙인 윤모씨도 가세해 소동은 5분 가까이 계속됐다. 윤씨는 과거 김씨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했다. 김씨와 윤씨는 국민의힘 당원이고 황씨는 당원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와 황씨는 주요 정치인을 쫓아다니며 현장을 유튜브로 생중계해왔다. 김씨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약 7000명, 황씨 채널 구독자는 약 9만명이다. 구독자가 수십만명인 유력 정치 관련 유튜브 채널에 구독자 수가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이들의 생중계를 지켜보는 실시간 접속자는 3000~4000명 수준으로 주요 방송사 유튜브 채널 생중계 때보다 많은 경우가 적잖다. 극렬 정치 관련 유튜버들은 생방송 도중 지지자들이 보내주는 ‘수퍼챗’(시청자가 유튜버에게 주는 후원금)이나 방송에 공개된 후원 계좌 입금으로 돈도 번다고 한다.

이들에게 정치적 갈등은 수입원 역할을 한다. 갈등이 증폭된 상황에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면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지지 성향에 따라 “속 시원하다”며 돈을 더 많이 보내주기 때문이다. 극렬 유튜버들이 방송에서 욕설과 폭언을 하며 시청자들을 자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대표 선거 레이스가 시작된 이후 연설회장은 물론 TV 토론과 당협위원회 행사장까지 극렬 유튜버들이 몰려와 날을 세웠다”며 “이들이 생중계해온 혐오의 에너지가 15일 행사에서 난투극으로 터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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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렬 유튜버들은 정치인에 대한 찬반이 분명한 게 특징이다. 본인이 쫓아다니는 정치인을 향해 맹목적인 지지를 드러내면서, 그와 경쟁하는 정치인을 향해선 저주와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특정 정치인을 일관되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조회 수가 가장 잘 나오는 정치인을 골라 따라다니는 경우도 많다.

또 다른 유튜버 A씨는 지난 1월,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동훈 후보의 열성팬을 자처하며 새벽부터 전국 일정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4월 총선 후엔 한 후보를 비난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A씨는 “반한동훈 성향 유튜버가 일종의 ‘블루 오션’이라 생각해 개척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전당대회장, 기자회견장에 따라다니며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게 고함을 치고 외모를 포함해 상대를 일방적으로 비하하는 내용의 영상도 올린다. 배후 존재 여부나 폭력 내용 면에선 차이가 있지만 일부 유튜버의 행태를 두고 “한국 정치사에서 사라졌던 정치 깡패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도 있다.

국민의힘 최고위원 선거에 나선 김재원 후보는 이날 방송 토론회에서 “이렇게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플라스틱 의자가 날아다닌 것은 과거 ‘용팔이 사건’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용팔이 사건은 1987년 국가안전기획부의 사주를 받은 폭력배들이 각목을 들고 통일민주당 창당 대회에 난입해 행사를 방해한 사건이다. 극렬 유튜버들은 지난 9일 첫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방송 토론회가 열렸을 때도 방송국 밖에서 욕설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경찰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X년 꺼지지 못해, 옷을 확 벗겨버릴라” “이 개XX야” 같은 욕설을 하며 이 장면을 생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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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용팔이 사건’ 당시 김용남.


지난 15일 충청권 합동 연설회장에서 충돌한 유튜버 김씨와 황씨는 연설회장 밖에서도 몸싸움을 벌였다. 황씨가 약 3분간 김씨를 향해 주먹질 등을 하며 폭행했고 이 장면이 김씨의 카메라로 중계됐다. 김씨와 황씨는 당일 밤 ‘폭행 후일담’ 영상으로도 돈을 벌었다. 김씨 유튜브엔 지지자들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후원금을 보냈다. 자정 무렵 황씨가 라이브 방송을 켜자 구독자들이 “고생하셨다”며 수퍼챗을 보냈다. 유튜버 수익 추정 사이트인 블링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구독자가 많은 황씨는 최근 한 달간 수퍼챗으로만 약 1500만원을 벌었다.

국민의힘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른다. 서병수 전당대회 선관위원장은 16일 각 후보 캠프에 공문을 보내 “지지자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해 달라”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에 “전당대회가 이렇게 공멸의 길로 간다면 승리자 또한 절반은 패배자가 된다”고 했다.

원희룡·한동훈 후보 캠프는 난장 사태의 책임을 상대로 돌리며 수사 의뢰를 촉구하고 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유튜버는 돈을 좇을 뿐이고, 정당이 나서서 건전한 민주주의를 해치는 해당 행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대처에 소극적인 상황”이라며 “당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전당대회가 소수의 유튜버에게 방해받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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