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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5 (일)

‘백종원 선생님’ 말씀과 100만 폐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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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화방송(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더본코리아 대표이자 방송인 백종원씨 모습. 문화방송 유튜브 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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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라 | 뉴스서비스부 기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백종원은 처음엔 가맹점주들과 분쟁 중인 가맹사업본부 대표로 입을 열었지만, 금세 대중에게 익숙한 스타 방송인이자 자영업 조언자로 돌아섰다. 화제를 모았던 문화방송(MBC) 프로그램 ‘손석희의 질문들’ 얘기다. ‘연돈볼카츠’ 프랜차이즈 갈등에 따른 ‘100분 토론’인 줄 착각하고 티브이 앞에 앉았는데, 넉살 좋은 말솜씨의 요식업 전문가 ‘백종원 선생님’을 모시고 귀한 말씀을 듣는 ‘토크쇼’를 보게 돼 당황하게 된 느낌이랄까.



백종원은 ‘3천만원 예상매출액을 거론하는 가맹본부 말에 속았다’는 가맹점주 주장에 대해 “영업사원이 영업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 했던 말을 꼬투리 삼았다”고 반박했다. 녹취록을 짜깁기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꺼내놨다. ‘속은 게 맞다’고 재반박할 가맹점주들은 그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물론 백종원은 ‘가맹점주 입장에서 질문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진행자 손석희에게 “공중파에서 저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면 안 된다, 반칙이다”라며 손사래까지 쳤다. 하지만 그 말이 겸연쩍어지는 방송은 계속 이어졌다.



아무리 시청률 보증수표인 백종원이라지만, 첨예한 갈등 와중에 일방을 불러 얘기를 들어보는 토크쇼라는 기획이 이번 연돈볼카츠 이슈를 불러내기에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가맹본부의 가맹점 모집 과정에서 과장·허위 정보 제공 공방, 추후 가맹 브랜드 관리 책임 문제, 원자재·완제품 가격과 수익률을 둘러싼 본사와 가맹점 사이의 정보 비대칭, 영업 악화와 손해의 책임 공방까지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의 여러 문제가 집약적으로 뒤얽힌 게 이번 이슈였다.



하지만 가맹점주를 대리한다는 손석희의 질문은 능수능란한 방송인 백종원의 일방적 반박에 멈춰섰고, 또다른 당사자의 재반박이 부재한 자리에서 하다 만 것 같은 논쟁은 공허해 보였다. 손석희가 관리와 지속가능성을 문제를 풀 키워드로 제시한 마당에 백종원이 자신의 가맹 점포들을 직접 찾아 ‘관리’하는 모습을 영상 콘텐츠로 담은 ‘내꺼내먹’ 유튜브 채널을 소개하는 대목에선 백종원 홍보 방송인지 헷갈릴 지경이기도 했다.



방송의 마무리는 자영업 구세주인 ‘백종원 선생님’의 말씀과 조언을 새겨듣는 것으로 넘어갔다. 연돈볼카츠 갈등에 대해선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을 기다려보자’, ‘가맹본사로서 관리와 지속가능성에 좀 신경 써달라’, ‘허허 그러겠다’, 좋은 게 좋은 걸로 봉합됐다.



이런 갈등은 백종원 브랜드가 처음도 아니고, 공정위의 사후적 심의만으로 예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의 백종원 개인의 선의에 기대어 봉합을 기다릴 일이 아닌 것은 더더욱 당연하다.



지난 10여년간 프랜차이즈 산업은 외형상 크게 성장했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자료를 보면, 2013~2022년 가맹 브랜드 수는 3691개에서 1만1844개로, 가맹점 수는 19만여개에서 33만여개로 크게 늘어났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40~50대가 비자발적 퇴직 뒤 경험 부족을 안고 어쩔 수 없이 창업전선으로 가는 고용 구조가 성장의 동력이 됐을 것이다.



이런 산업 생태계에서 정보의 비대칭과 자본의 우위, 플랫폼 독과점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갑질과 불공정을 막는 게 정부와 국회 입법이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가맹점들의 협상력을 제고할 가맹사업법 개정은 지지부진하고,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 제정도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지난해 폐업 사업자 수가 연간 80만명대에서 100만명 수준으로 수직 상승했다고 한다. 장기화된 고금리와 내수침체가 영향을 미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또 가맹사업본부의 갑질, 배달앱 플랫폼의 독과점 군림 등 현실적 질곡들도 폐업의 트리거가 됐을 것이다.



토크쇼에 나온 ‘백종원 선생님’은 골목식당에서 하듯 방청석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메뉴를 줄여라’ ‘상권이 바뀌었다면 새 메뉴를 개발하라’면서 자기계발성 쓴소리를 내놨다. ‘끓여보니 사람마다 라면 맛이 다르다고, 라면회사에 와서 항의하면 안 된다’며, 가맹점과의 분쟁에서도 자영업자 자기 책임에 무게를 싣는 인식의 격차를 보여줬다.



하지만 연 100만명 폐업 사태가 그저 개개인의 노~오력 부족 때문일까. 배달앱 ‘배달의 민족’에선 한꺼번에 수수료를 44%나 올리는 횡포가 벌어졌고, 연돈볼카츠를 비롯해 빈발하는 가맹점 갈등은 곳곳에서 위기 신호를 보낸다. 최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에 바쁜 당정이 이 문제들을 챙길 여력이 있을지 걱정이 앞설 따름이다.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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