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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3 (금)

“트럼프는 히틀러” 비판했다 충성파 전향… ‘힐빌리 39세 흙수저’ 밴스 부통령 후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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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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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J.D. 밴스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갖지 못한 강점으로 무장한 인물이다. 39세의 젊은 밀레니얼 세대, 미 백인 노동자 계급의 상처를 완벽히 이해하는 흙수저 출신의 엘리트, 이라크전에 참전한 해병대 출신, 인도계 아내….

미 언론들은 “트럼프와 일치하는 사상과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트럼프가 갖지 못한 특성을 가진 밴스 의원의 면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득표에 막대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 풍랑 속 외할머니가 키운 ‘아메리칸 드림’


1984년 오하이오 주 미들타운에서 태어난 밴스 의원의 유년 시절은 ‘가난과 폭력, 마약 속에서도 외할머니가 사랑으로 키운 손자’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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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2016년 펴내 베스트셀러가 된 책 ‘힐빌리의 슬픈 노래(부제: 위기에 처한 가족과 문화에 대한 회고록)’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희망이 없는 가난한 백인 마을, 만연한 폭력과 마약, 해체되는 가정의 슬픔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힐빌리는 미국 애팔래치아 산악 지역에 거주하는 쇠락한 백인 노동 계층을 가르키는 말이다. 당시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맞물려 ‘트럼프 현상을 이해하려면 이 책을 봐야한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그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실제 그와 그의 이부(異父) 누나는 부모님의 이혼과 어머니의 약물중독 등으로 불안정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름 또한 본명이었던 제임스 도날드 보우만에서 부모님 이혼 후 외할아버지 성을 따라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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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밴스 의원을 지탱해 준 건 망가진 엄마를 대신해 그를 돌봐준 외할머니였다. 그의 외할머니는 회고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동시에 현재도 여전히 밴스 의원의 공식 홈페이지 자기소개에서 한 문단을 할애해 소개되고 있는 각별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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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할머니 마마우(Mamaw)는 구원의 은총이었다”며 “할머니의 엄격한 사랑과 규율이 날 올바른 길로 인도했다”고 전했다. 밴스 의원이 ‘정 많은 욕쟁이(F-word) 할머니’로 묘사한 그의 할머니는 교육을 중시했고, 전통 민주당원이었지만 권총 19개를 소유했으며 깊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밴스 의원이 해병대에 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5년 세상을 떠났다.

밴스 의원은 2003년 지역 고등학교 졸업 후 미 해병대에 입대해 5년 간 복무하며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이후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과 철학을 전공하며 학부를 2년 만에 수석 졸업했다. 예일대 로스쿨에서 공부할 때는 예일 법률저널 편집장과 예일대 로스쿨 재향군인회 회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예일대 로스쿨에서 동문으로 만나 2014년 결혼한 아내 우샤 칠루쿠리와의 사이에 이완(6세), 비벡(4세), 미라벨(2세) 등 세 자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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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법조계에서 일하는 칠루쿠리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회고록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위로와 격려를 해준 ‘영혼의 가이드’로 표현된 칠루쿠리는 이번 대선에서 인도계 표를 몰아오는데 확실한 기여를 할 것으로 평가된다.

2013년 로스쿨 졸업 후 밴스 의원은 다국적 로펌과 캘리포니아의 투자회사에서 벤처 캐피탈리스트로 일했다. 바로 이 때 억만장자인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 등 실리콘밸리 대부호들과 네트워크를 맺었다. 2016년 회고록이 ‘대박’이 나면서 이를 정치 경력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했고, 2022년 미국 상원에 선출됐다. 미국의 상원의원은 주별로 두 명 씩, 전국에 딱 100명 뿐인 자리다. 그의 일대기가 ‘아메리칸 드림’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 트럼프 ‘극혐’에서 ‘열성 지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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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밴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극혐’에 가깝게 생각했다. 2016년 대선까지만 해도 트럼프 현상을 “(자극적 선동으로) 통증을 잊게 하지만 고통의 원인은 절대 해결하지 못한다”며 “문화 마약(cultural heroin)”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트럼프 본인의 매력 떄문이 아니라 기성 언론, 정치, 경제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예일대 동문과의 대화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민정책을 비판하며 “미국의 히틀러”,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라고 까지 표현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 “백인 노동 계층을 매우 어두운 곳으로 이끌고 있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21년 미국 상원 의원 선거에 출마한 직후 돌연 과거 자신의 비판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트럼프 충성’으로 전향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어 자신의 선거 캠페인 핵심 전략을 트럼프의 강경우파 정책을 지지하는데 두고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MAGA) 운동’에 동참했다. 트럼프의 지지선언에 힘입어 그는 상원에 당선됐다.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트럼프주의’는 더 견고해져 그는 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 중에서도 가장 충성심 높은 인물 중 하나로 꼽혀왔다. 적극적으로 TV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과 입장을 옹호했으며, 최근까지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 형사 재판에서도 수행원으로 참여했다.

밴스 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도 절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와 밴스를 연결해준 건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로, 트럼프 주니어도 그때부터 함께 만났다”고 전했다. NBC 방송은 공화당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당초 트럼프는 더그 버검을 유력한 부통령 후보로 생각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이 멍청한 판단이라며 결사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질은 ‘충성심’”이라며 “그가 수개월 간의 숙고 끝에 밴스를 선택한 것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는 밴스가 TV에서 자신을 가장 잘 변호할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고 학력과 젊음도 높이 샀다”며 “과거 펜스 부통령처럼 자신을 공개적으로 배신하지도 않을 것으로 봤다”고 전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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