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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4 (토)

[朝鮮칼럼] 두 왕따 지도자의 ‘도원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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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북 동반자 조약 벌써 한 달… 러와 친구로 지낼 생각 버려야

그들이 우크라 전선에서 최대한 국력 소비하게 만들고

우리는 우크라 무기 지원 개시

이후 러 정책 변화에 따라 무기의 종류와 규모 조정해야

NATO와 공동 대응책 미리 마련을

조선일보

김정은과 푸틴이 지난달 동맹 조약을 맺고 악수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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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북한 간에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 체결된 지 4주가 지났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 회의 연설에서 러시아의 대북 군사·경제 지원을 강력히 경고했다.

러·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은 침략 전쟁과 불법적 핵·미사일 개발로 세계에서 가장 고립되고 지탄받는 두 왕따 지도자가 이제부터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도원(桃園)의 결의’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기로 러시아에 올인하면서 이미 사실상의 동맹이 되었고, 조약 체결로 이를 공식화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고 철군을 요구하는 2022년 3월 2일 유엔총회 결의안에 러시아와 함께 반대표를 던진 유엔 회원국은 4국뿐이었고, 그중에서도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까지 지원한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

조약 제4조는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되어있다.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의무를 규정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개입을 피할 근거도 마련해 놓았다. 그럼에도 이 조약은 1996년 폐기된 1961년 구 동맹 조약의 복원을 넘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불길한 도전을 제기한다.

신 조약이 불길한 첫째 이유는 이를 지배하는 러시아의 대북 부채 의식에 있다. 1961년 동맹 조약은 북한이 소련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체결된 것이므로 러시아가 북한의 요구를 무시하고 거부해도 그만이었다. 1970년대 중반 소련이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제공 요구를 거부하자 북한이 이집트에서 도입하여 독자 개발에 나서게 된 사연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장 외롭고 힘들 때 김정은에게 진 신세를 생각하면 이제 김정은이 도움을 청할 때 야박하게 거절하기 어려워졌다.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무력화(無力化)하는 데 앞장서오고, 식량과 에너지 지원을 통해 북한 경제 위기의 해결사 역할을 해온 데는 이런 부채 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는 북한이 안심하고 핵 무력 증강과 기술적 고도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군사 분야에서도 북한은 첨단 무기와 위성 기술 등의 이전을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생겼고, 러시아는 이에 최대한 성의를 보여야 하는 의무감을 갖게 되었다. 신 동맹 조약을 일시적 필요에 의한 거래적 차원의 ‘정략결혼’으로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신조약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불길하다. 핵무장한 북한에 동맹 조약으로 안전보장까지 제공하는 것은 북한에는 공격받을 만한 도발을 더 과감하게 해도 된다는 면허증이자 도발에 대한 보험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유사시 한미 동맹의 대북 군사적 옵션을 결정적으로 제약한다. 조약 4조가 북한이 침략받을 경우에만 적용되므로 한국이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푸틴의 주장은 본질을 호도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러·북 동맹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위험을 높인다는 점에서도 불길하다. 이는 2022년 2월 시진핑·푸틴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중·러 간 ‘제한 없는 파트너십 협정’과 1961년 7월 체결된 중·북 동맹 조약을 보강하는 중·러·북 3각 연대를 완성함으로써 북방 세력의 전략적 입지와 현상 변경 능력을 강화한다. 중국이 러·북과 한통속으로 비치는 것을 꺼리고 동아시아의 진영화를 우려하는 모습만 보고 러·북 밀착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미국의 군사적 역량이 러·북 동맹의 위협에 대비하는 데 묶이는 만큼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응할 여력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중국은 전략적 어부지리를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러·북 동맹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첫째, 한국의 우방이 되기를 포기한 러시아와 계속 친구로 지낼 생각은 버려야 한다.

둘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국력을 최대한 소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유사시 북한을 지원할 여력이 줄어든다. 러시아의 향후 태도를 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 여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일단 무기 지원을 개시한 후 러시아의 정책 변화에 따라 무기의 종류와 규모를 조정하는 것이 순서다.

끝으로, 러시아의 보복에 대비하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공동 대응책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한국에 대한 보복을 서방권 전체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하여 공조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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