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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초대형 ‘한글 신전’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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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버 이즈 나우’ 국제전에 한국 작가 최초로 초청된 강익중

고향 청주서 40주년 회고전도 개막

오는 10월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초대형 ‘한글 신전’이 들어선다. 설치미술가 강익중(64)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피라미드 앞에서 펼쳐지는 국제미술전시 ‘포에버 이즈 나우(FIN: Forever Is Now)’에 한국 작가 최초로 초청받아 신작을 선보인다.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가 후원해 2021년부터 매년 가을 열리는 전시다. 지난해까지 매년 150만명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고, 소셜미디어에서 10억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다.

올해 전시엔 10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신작 ‘네 개의 신전’을 선보일 강익중은 본지 인터뷰에서 “최고 높이 5m에 달하는 직육면체 네 개를 세워서, 외벽은 한국 민요 ‘아리랑’ 가사를 한글,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로 각각 채우고, 내부는 전 세계 아이들이 각자의 꿈을 그린 5000여 점의 드로잉 벽화로 구성할 것”이라고 했다. “피라미드는 과거, 아리랑은 현재, 아이들은 미래다. 지구상의 분열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교류를 통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올해 창작 활동 40주년을 맞아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회고전도 4일 개막했다.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청주 가는 길: 강익중’은 1984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작가의 대표 프로젝트를 망라해 선보인다. 삼라만상, 달항아리 시리즈, 한글 프로젝트를 비롯해 고향 산천을 재해석한 신작이 설치됐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청주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그립고 설레고 궁금한 곳”이라며 “청주 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무심천을 오픈홀 계단에 흘러내리듯 설치했고, 어릴 때 뛰놀던 우암산을 2층 입구에 펼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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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무심천을 재해석해 청주시립미술관 오픈홀 계단에 흘러내리듯 설치했다. /청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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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우암산'. 강익중 작가가 어릴 때 뛰놀던 우암산을 재해석해 만든 작품이다. /청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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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어야 했던 유학 시절, 그림 그릴 시간이 부족했다. 3인치(7.6㎝) 조각을 직접 제작해 버스나 지하철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강익중을 대표하는 ‘3인치 캔버스’의 시작이다. 손바닥 크기의 캔버스 수천, 수만 개가 군집을 이뤄 다채로운 조형적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높이 10m에 달하는 1층 전시장은 한글 3000자, 200개 문장으로 구성된 ‘내가 아는 것’으로 벽면을 가득 채웠다.

실향민들의 꿈을 모은 ‘그리운 내 고향’은 2층 통로에 있다. 이북5도민회 체육대회 등을 다니며 모은 그림 6000장 중 일부다. “손바닥만 한 종이에 ‘꿈을 그려 달라’ 했더니, 처음엔 머뭇하던 어르신들이 그리운 고향 풍경, 집앞 사거리 약도를 또렷하게 그렸다. 통일 되면 고향집 구들장 밑에 숨겨놓은 스케이트를 꼭 찾아달라고 자식들에게 당부한 분도 있었다. 이들의 기억이야말로 보존돼야 할 정신 문화재라고 생각한다.”

달항아리, 한글에 이어 통일을 소재로 작업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인생의 두 스승, 백남준과 김향안” 이야기를 꺼냈다. 1994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을 열었을 때다. “백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30세기가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과거 천년을 끌어안고 미래 천년을 내다보는 사람, ‘낮에 별을 보는 무당’이었다. 미래를 상상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화두를 주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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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들의 꿈을 모은 '그리운 내 고향'이 2층 통로에 걸려 있다.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어르신들이 고향 집 풍경, 집 약도를 또렷이 그렸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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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화백의 아내 김향안은 그에게 세 가지 당부를 했다. “아침을 꼭 먹어라. 식당에선 팁을 많이 줘야 한다. 유혹과 기회를 구별하라. 민족과 역사, 세계에 도움이 된다면 그게 기회다.” 그는 “세 번째 당부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로서 할 일은 문화로 연결하고 화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글은 자모(字母)가 모여 의미가 되고, 달항아리는 위아래를 따로 빚어 붙여야 온전한 그릇이 된다. 남과 북도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져 있다.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셨는데, 저는 산 속에 물이 있고, 물 속에 산이 있다고 본다. 결국은 이어져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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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가는 길: 강익중' 전시장 전경. /청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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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한글 인기도 체감한다. 지난해 카이로 아인샴스 대학에서 열린 한글 워크숍은 복도까지 찰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는 “그때 이집트 신전을 방문하며 신작의 영감을 받았다. 인생 프로젝트라 생각하고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청주 전시는 9월 29일까지, 성인 관람료 1000원. 이집트 피라미드 전시는 10월 24일~11월 16일 열린다.

☞강익중(64)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4년부터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한다. 1994년 미국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을 열었다. 2016년 런던 템스강 페스티벌에서 실향민들의 그림을 모아 만든 설치 작품 ‘집으로 가는 길’을 템스강 위에 띄웠다. 199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상, 201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을 받았다.

[청주=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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