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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김도훈의 엑스레이] [27] 아재들은 거울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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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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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산 출신이다. 1899년 개방한 개항장이다. 우리 동네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구역이었다. 다니던 초등학교도 원래 일본인 소학교였다. 매년 일본 졸업생들이 방문하는 행사도 열렸다. 그래서 그랬는지 일본 노래도 곧잘 유행했다. 마쓰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처음 들은 것도 그 시절이다.

‘푸른 산호초’를 재발견한 건 영화 ‘러브 레터’가 개봉한 1999년이다. 주인공 남자가 조난당해 죽어가며 부르던 노래였다. 나는 그 노래가 좋았다. 희망 넘치는 곡조가 좀 설레게 하는 데가 있었다. 일본 거품 경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임을 안 건 좀 더 후의 일이다.

한일 양국 뉴스가 ‘푸른 산호초’로 뒤덮였다. 걸그룹 뉴진스 멤버가 일본 팬 미팅에서 노래한 덕이다. 영상은 수백만 뷰가 넘었다. “3분으로 40년 전 일본을 끌어왔다”는 댓글에는 ‘좋아요’가 수천 번 찍혔다. 좋아하는 노래를 좋아하는 걸그룹이 부르다니 아재 팬에게는 선물이었다.

다른 아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멸종 위기 아재 지식인 보호 구역 페이스북에는 불평 섞인 분석이 쏟아졌다. 가장 괴이한 분석은 이 퍼포먼스 타깃이 ‘푸른 산호초’를 아는 중년 이상 남성이라는 소리였다. 10대 소녀가 아재들에게 애교를 떨게 만들다니 비윤리적이라는 불평이었다.

그럴 리가 있나. 중년 남성은 타깃이 아니다. 음반도 안 사고 관련 상품도 사지 않는 여러분은 매력적인 타깃이 될 수가 없다. 카페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이 친절하게 웃는다고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듯, 걸그룹의 타깃도 여러분이 아니다.

일본 한 대기업 성희롱 방지 교육은 이렇게 시작한다. 참가자들 자리에는 손거울이 놓여 있다. 강사는 말한다. “자, 거울로 얼굴을 보세요. 아시겠죠? 젊은 여성이 당신에게 상냥한 건 상사라서 그런 겁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자, 이 글을 읽고 약간 불쾌함을 느낀 아재라면 지금 거울을 보시라. 아시겠죠?

조선일보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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