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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교육은 없고 ‘시험’만 남은 로스쿨 [홍성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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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공동 입학설명회에서 참가자들이 관련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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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지난 5월 ‘기초법학의 죽음’이라는 다소 이례적인 주제의 학술대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로스쿨 체제에서 법철학, 법사회학, 법사학 등 소위 ‘기초법학’이 고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은퇴한 교수들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신진 연구인력이 연구를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며, 수강 신청자가 많지 않아 폐강 위기에 몰리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기초법학 분야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법, 환경법, 세법 등 변호사시험 주요 과목이 아닌 분야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잠시 2009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새로 도입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상기해보자.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의 양대 축으로 운영되던 기존 법조인 양성제도는 단일 시험과 국가교육기관을 통해 법조인을 배출하는 제도로서 획일적이고 경직되어 있으며 법조를 특권화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시험 위주의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법조인 양성제도를 전면 개혁하자는 제안이 힘을 얻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의 로스쿨 체제가 출범된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설치된 각양각색의 로스쿨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여 다양한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2024년 현재의 로스쿨은 ‘교육을 통한 양성’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시험’이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되돌아갔다. 로스쿨 입시는 법학적성시험(LEET)이라는 ‘시험’이 사실상 당락을 가르게 된 지 오래다. 여러 전형요소를 활용하여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여 교육한다는 것이 로스쿨 도입의 중요한 목표였지만, 법학적성시험이 절대적인 전형요소가 되면서 애초의 목표는 무색해졌다. 그러자 시험에 능했던, 수능시험을 잘 봤던 학생들이 법학적성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어 로스쿨 입시를 휩쓸고 있다.



일각에서는 로스쿨이 특정 대학 출신이나 나이 어린 학생을 우대한다고 의심하지만, 사실 시험 점수에 따라 줄을 세운 결과일 뿐이다. 대학에서도 더 이상 로스쿨 지망생들에게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고 지도하기 어려워졌다. 많은 대학이 법학적성시험을 위한 강좌를 개설하고 있고, 아예 전담 교원을 채용하는 대학도 있다. 예비법조인들은 사법시험 때처럼 신림동 고시원을 찾는 대신, 법학적성시험 고득점을 보장해준다는 학원 강의로 몰리고 있다.



로스쿨에 입학하고 나면 변호사시험이라는 또다른 시험이 기다린다. 로스쿨에서 변호사시험은 절대적인 존재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합격에 대한 압박은 점점 심해졌고, 시험 공부와 무관한 일에 관심을 쏟기 어려워졌다. 시험 과목이 아닌 과목들은 고사하고 있고, 시험 대비에 적합한 강의들만 살아남고 있다. 학생들도 수업 외에 다양한 활동에 시간을 낼 여력이 없다. 로스쿨이 거대한 변호사시험 학원이 되었다는 비판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한마디로, 시험을 넘어서겠다고 호기롭게 출발한 로스쿨이 다시 시험이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전락한 것이다.



사법시험 시절을 추억하며 ‘그때는 좋았는데…’라는 식의 진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당시 사법시험 체제가 시대적 한계에 부딪혔던 것은 사실이고, 만약 그대로 두었다면 현재의 로스쿨 체제 못지않은 문제점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2010년대 초반 로스쿨 도입기를 되돌아보면 문제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그때만 해도 법학적성시험 성적은 여러 입시전형요소 중 하나의 요소에 불과했고, 학점이나 경력 등에서 출중한 학생들도 로스쿨 진학에 성공할 수 있었다. 변호사시험 합격에 대한 부담이 적었기에 로스쿨에서는 다양한 학문적, 교육적 시도가 감행될 수 있었다. ‘시험’ 합격에 대한 압박을 줄이는 것이 로스쿨다운 모습을 갖추는 데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이 시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로스쿨이라는 제도는 그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쉽게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시험 관리’ 말고는 할 게 없었던 사법시험 체제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고, 변호사시험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수많은 선택지가 있고, 장점을 살리고 부작용을 줄이는 쪽으로 적절히 정책을 짠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로스쿨로 변신할 수 있다. 2000년대, 그 뜨거웠던 사법개혁, 법조인 양성제도 개혁의 열망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때의 반만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대안을 찾고 변화를 모색한다면 금세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 확신한다. 로스쿨 출범 15년이 지난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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