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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이슈 미술의 세계

“뉴진스 팬 아니어도 이건 꼭 사야해”...MZ, 열쇠고리·가방에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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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뉴진스 열쇠고리·가방 등 협업

일리카페-이우환 아트 컬렉션
대표작 ‘무제’ 커피잔에 입혀


매일경제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명동쇼핑거리 한복판에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해 만든 뉴진스의 비주얼 아트 이미지가 옥외 광고로 노출돼 있다(왼쪽). 오른쪽은 뉴진스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컬래버레이션 디자인 상품들. 송경은 기자·무라카미 다카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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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명동쇼핑거리. 한 건물 외벽에 입혀진 대형 옥외 광고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일본의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K팝 걸그룹 뉴진스와 협업해 만든 이미지로, 작가가 자신의 회화 작품 특유의 알록달록한 해바라기 얼굴 도상을 뉴진스 멤버들을 상징하는 토끼 얼굴로 변형해 제작했다. 미술 작품이 상업용 광고 이미지로 변신한 셈이다. 이 컬래버레이션 이미지는 앨범 자켓뿐만 아니라 열쇠고리와 가방, 인형, 이모티콘 등 다양한 상품으로 제작돼 온·오프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뉴진스 팬 아니어도 이건 꼭 사야해” 같은 반응이 나왔다.

최근 미술 작품을 활용한 아트 굿즈가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각광 받으면서 순수 미술과 디자인 상품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과거 산업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졌던 회화, 조각 등 순수 미술 작품이 음반, 의류, 잡화 등 다양한 상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로 등장하면서다. 전시 기념품에 머물러 있던 아트 굿즈가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상품으로서 주목받게 된 것이다. 특히 SNS 등의 발달로 컨템퍼러리 아트(동시대 미술)가 이전보다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면서 유명 작가와 협업한 아트 굿즈를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이른바 ‘아트슈머(아트+컨슈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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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정식 데뷔를 기념해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왼쪽 넷째)와 협업한 뉴진스가 기념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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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커피 브랜드 일리카페는 지난 5월 한국의 단색화 거장으로 꼽히는 이우환 화백과 협업해 ‘아트 컬렉션 이우환 에디션’ 커피잔 세트를 한정 수량을 선보였다. 흰색 에스프레소 잔과 카푸치노 잔 표면에 그려진 이 화백의 단아한 붓칠이 눈길을 끈다. 이는 국내에서 지난 1월 한정 판매 이후 4개월 만의 재출시로, 당시 온라인 판매 시작과 동시에 소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약 10분 만에 200세트가 완판된 바 있다.

이 화백의 붓질은 대표작 ‘무제’에 등장하는 것보다 경쾌한 형태. 회화 작품에 사용했던 청색과 적색 붓질에 일리 커피의 긍정적 윤리, 취향, 과학, 창의성을 결합해 새롭게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일리카페의 아트 컬렉션 이우환 에디션은 지난해 10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Frieze) 런던 2023’을 통해 처음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지난 3월 홍콩에서 개최된 아트페어 ‘아트 센트럴 2024’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해당 상품은 오는 9월 4~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프리즈 서울 2024’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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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브랜드 일리카페가 단색화 거장 이우환 화백과 협업해 출시한 ‘아트 컬렉션 이우환 에디션’. 오는 9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프리즈(Frieze) 서울 2024’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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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순수 미술을 활용한 디자인 상품은 있었다. 하지만 그려진 작품을 단순히 입히는 수준이었던 데다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클로드 모네 등 미술사에 등장하는 작품들에 치중해 상품이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최근 들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아트굿즈는 생존 작가의 동시대 미술을 활용한 작품들로, 지금의 미술 시장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시장에서 활발하게 작품이 거래되고 있는 작가가 직접 브랜드와 상품에 맞게 작업한 이미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희소성도 높다. 개성과 희소 가치에 열광하는 MZ세대가 아트굿즈에 환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미술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데다 SNS에 익숙한 젊은층이 미술 시장에 대거 유입된 영향도 크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원화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판화의 인기가 최근 높아진 것과 유사한 현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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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홍콩에서 열린 아트페어 ‘아트 센트럴 2024’ 전시장에 마련된 일리카페의 ‘일리 아트컬렉션 이우환 에디션’ 부스. 홍콩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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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흐름에 명품 브랜드들도 앞장서고 있다. 구사마 야요이, 리처드 프린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과 협업했던 글로벌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지난 2022년 한국의 고(故) 박서보 화백 작품을 모티브로 한, 이른바 ‘박서보 백’을 200개 한정 출시했다. 구찌는 전 세계에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협업하고 있다. 스페인 출신 작가 이그나시 몬레알의 회화를 프린팅한 구찌의 한정판 티셔츠가 대표적이다. 최근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프랑스·베트남 출신 작가 시릴 콩고는 지난 2019년 샤넬과 협업해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샤넬로부터 받은 영감을 캔버스뿐만 아니라 드레스, 가방 등에 펼쳤다.

특히 젊은 작가들에게는 디자인 상품 협업이 들쭉날쭉한 작품 판매 대신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일례로 최근 학고재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등에서 잇달아 드로잉·회화 작품을 전시한 엄유정 작가는 초창기 소설가 김영하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의 겉표지 그림으로 유명세를 탔다. 엄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삽입한 엽서, 에코백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역시 밴드 잔나비의 2집 앨범 ‘전설’의 커버 그림으로 이름을 알린 아뜰리에 아키의 콰야 작가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그림이 들어간 캘린더와 포스터, 엽서, 스티커, 파우치 등을 상시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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