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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이슈 미술의 세계

[단독] 미국 미술관이 내건 이중섭·박수근 그림 4점 다 가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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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마의 ‘한국의 보물’ 전에 이중섭 작가의 작품으로 표기된 출품작 ‘황소를 타는 소년’. 마이클 김 사진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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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부터 6월30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뮤지엄(라크마)에서 열린 재미동포 기증 컬렉션 전 ‘한국의 보물’에 출품된 이중섭·박수근 작가의 작품이 ‘확정된 진작으로 볼 수 없다’는 공식 감정 평가를 받았다. 이중섭·박수근의 그림에 위작 의혹이 일자 라크마 쪽이 한국 미술전문가 4명을 초청해 특별감정을 받은 결과다. 마이클 고반 라크마 관장은 이에 따라 전시도록을 내지 않고 후속 조사를 하기로 했다.

특별감정에 나선 이들은 미술사가인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예사 연구자인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태현선 삼성미술관 리움 큐레이터,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이다. 이들은 지난 26~28일 현지에 머물면서 라크마에 있는 작품들을 실견한 뒤 연구 토론회에서 전시를 기획한 스티븐 리틀 동양부장 및 라크마 소속 다른 기획자들에게 감정 결과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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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물’ 전시장.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으로 표기된 그림들이 내걸려있다. 마이클 김 사진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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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문가들은 이중섭·박수근 출품작 각 2점에 대해 ‘확실한 진작으로 볼 수 없다’ ‘의심스럽다’는 소견을 냈다. 이중섭의 ‘기어오르는 아이들’이라고 표기된 타일 작품은 1950년대 이중섭의 원작‘장대놀이 하는 아이들'을 본떠 만든 서명 없는 복제본으로 현재 국 내에 소장된 원작의 명확한 도판이 태현선 기획자에 의해 제시됐다. 이중섭 작으로 표기된, 벌거벗은 소년이 소의 등을 탄 모습의 유화인 ‘황소를 타는 소년’도 작가 특유의 황소의 눈 표현 기법이나 기운생동한 몸체 묘사가 보이지 않으며, 서명도 필적 자체가 진작과 다르고 적은 자리또한 여백이 아니라는 점에서 도저히 진작으로 볼 수 없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박수근의 작품으로 명기된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는 배경·인물 묘사법이나 등장인물 사이의 도상적 관계가 분명하지 않고 짜깁기해 그려진 것이 명백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와이키키 해변’의 경우도 필치가 기존 박수근의 진작과 크게 다르다는 지적이었다. 다만 미국 컬렉터의 요구로 사진 등을 본떠 서명 없는 주문용 상품그림을 작가가 제작했을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홍선표)도 일부 나왔다.

이외에도 홍선표 교수와 이동국 관장은 고미술 전시에 화원 이인문과 김명국의 작품으로 각각 나온 그림들도 둘의 작품이 아닌 작가미상이거나 중국 작가의 그림이라고 짚었다. 이런 착오는 화풍이나 낙관 등에 대해 사전에 기본적인 검증이 안된 결과이며 다른 출품작들도 시기나 작품 내역 측면에서 오류가 적지않고 질도 현저히 떨어져 ‘한국의 보물’전 작명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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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라크마 ‘한국의 보물들\' 전시장에서 열린 한국전문가 4명의 평가회의 후반부. 고반 관장이 한국 전문가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맨 오른쪽 끝)과 그 바로 뒤로 태현선 리움 소장품연구실 수석연구원이 보인다. 김 전 관장 왼쪽으로 한사람 건너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나타난다. 사진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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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마 ‘한국의 보물’ 전 전시장 들머리. 마이클 김 사진가 제공


현장에서 질의한 김선희 전 관장은 “전시 준비과정에서 기증자의 컬렉션을 놓고도 질적 수준이나 진위 등에서 여러 논란들이 진작에 제기됐는데, 기본적인 작품검증이 소홀하고 기획단계에서 치밀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전시기획의 정당성을 계속 주장한 스티븐 리틀 기획자와 달리 대다수 뮤지엄 관계자들은 한국 전문가들의 지적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한국의 보물들’ 전은 원로 재미동포 수집가 체스터 장이 지난 2021년 라크마 쪽에 기증한 한국 고미술과 근대미술 컬렉션 100여점 가운데 고서화와 근대미술품 등 35점을 추린 전시회로 지난 2월25일 개막했다. 출품작 진위 논란은 개막 직후부터 불거졌으나 국내 미술계에서는 1달여가 지난 4월초 본격적인 쟁점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2022년 문제의 작품들을 현지 수장고에서 감정한 뒤 위작 소견서를 작성한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과 박수근 유족 대표기관인 박수근감정연구소(대표 박진흥), 한국화랑협회가 지난 4월초 라크마 쪽에 전시 경위와 진품 근거를 요구하는 질의서를 이례적으로 발송한 것(한겨레 4월5일치 18면 단독보도)이 주된 계기가 됐다. 그러나 라크마 쪽은 5월21일 구체적 해명 없이 `추가연구를 지속하겠다’는 내용만 담은 관장 명의의 회신을 협회 쪽에 보낸 바 있다.

서구의 명문 뮤지엄에서 한국 미술품의 진위판별을 위해 국내 전문가들을 초대해 감정을 받고 평가회의를 연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실상 마이클 고번관장이 전시의 문제점을 인정해 도록 발간 중지를 천명한 만큼 이후 전시와 관련해 어떤 후속 조치가 진행될지도 관심을 모은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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